뿌꾸의 갑작스러운 동물병원 방문기
어제까지만 해도 신나게 뛰어놀던 뿌꾸가 오늘 아침엔 이상했다. 늘 ‘언니, 좋은 아침!!!!!!’ 하면서 펄떡거리는데 오늘 아침에는 집 안에서 안 나오려고 하는 게 아닌가. 계속 부르니까 어기적 거리면서 나오긴 하는데 뒷다리가 영 불편해 보였고 ‘끼잉끼잉’ 하고 아픈 소리를 냈다. 토하거나 설사를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계속 안 움직이려고 하고 특히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길래 ‘아침에 점프점프 하다가 뒷다리를 잘못 디뎌서 다쳤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간식도 마다하고 ‘산책 갈까?’ 하는 소리에도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산사태처럼 커졌다. 뿌꾸가 제일 좋아하는 게 산책인데, 8년 뿌꾸 견생에 산책을 마다한 적이 없었기에.. 하필 오늘은 5월 5일, 공휴일이라 문 연 병원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뿌꾸가 다니는 동물병원이 오전 10시부터 진료를 보길래 뿌꾸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문제는 애가 다리를 다친 것 같은데, 차에 어떻게 태우느냐. 병원에 가면 입마개 절대 안 하려고 도망 다니기 때문에, 입마개부터 우선 채웠는데 뿌꾸는 저항할 힘도 없는지 순순히 입마개를 찼다. 기력 없는 뿌꾸 모습에 온 가족의 근심은 더욱 깊어지고. 앞다리 쪽은 괜찮은 것 같아서 차에 태우기 위해 다리를 슬쩍 들었더니 ‘끼이잉 깽깽’하면서 아이고 나 죽네 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또 너무 놀라서 차까지 조금만 걷자 하고 뿌꾸를 어르고 달랬는데, 생각보다 순순히 자기 발로 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차 안에서 최대한 안 흔들리게 하려고 동생이 뿌꾸를 붙들고 아빠는 30킬로 속도로 저속 운전을 했다. 차에서도 뿌꾸는 뒷다리, 특히 왼쪽 다리가 불편한지 낑낑거렸다. 이쯤 되니 왼쪽 다리나 갈비뼈 부분이 부러져서 장기를 찌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내 안색도 파래졌다.
병원에 도착해서 엄마아빠는 주차하고, 나와 동생은 뿌꾸를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뿌꾸가 차에 오르내리는 건 또 잘해서 다행이었다. 근데 뿌꾸 이 녀석,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앗 여긴 병원이다’ 하는 촉이 왔는지 안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병원이 이번에 새 건물로 이사해서, 여기는 처음 와보는 것이었을 텐데도.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밀어봤는데, 다행히 바닥이 대리석이라 뿌꾸가 주르륵 밀린다. 이 와중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며 발가락 쭉 펴고 버티는 꼴이 귀엽긴 했지만, 혹여라도 뼈에 이상이 있는 거라면 더 심해질까 봐 너무 속이 탔다. 진료실은 2층인데,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좌절.. 안고 가기에는 뿌꾸 다리를 잘못 건드리면 어쩌나 또 겁이 나고. 동생에게 뿌꾸를 맡기고 일단 내가 2층에 올라가서 접수부터 하기로 했다.
뿌꾸 진료를 계속 보던 병원이라서, 강아지가 갑자기 오늘 아침부터 다리를 절고 안 움직이려고 하고 밥도 간식도 안 먹는다고 하니까, 일단 외과 선생님한테 바로 접수를 시켜주셨다. 뿌꾸를 2층까지 어떻게 데려오나 고심하고 있는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문이 쓱 열리더니 뿌꾸가 동생이랑 제 발로 들어오는 거 아닌가. 병원이라는 공포심이 다리의 고통을 이긴 건가… 일단 대기를 하는데 여기가 어딘지 확신을 한 뿌꾸는 조금 기가 죽었다. 장염 사건 이후로 오랜만에 동물병원 방문인데, 올 것이 또 왔구나 하는 표정.
접수하고 얼마 안 되어 뿌꾸는 진료를 볼 수 있었다. 특히 뒷다리를 좀 불편해하고 아파하는 것 같다고 하니, 외과 선생님이 촉진부터 해주셨다. 이 와중에 우리 뿌꾸, 1년 가까이 목욕을 안 한 데다 털갈이 시즌이라 냄새와 털뿜뿜 공격이 동시에 펼쳐지는데. 아빠가 조금 민망해하며 ‘얘가 목욕을 안 한 지 좀 오래됐습니다..’ 했는데 선생님은 ‘괜찮습니다!’ 하면서 계속 뿌꾸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셨다. 촉진을 받는 뿌꾸는 선생님이 왼쪽 뒷다리 쪽을 만질 때 작게 끼잉 했을 뿐 의연하게 서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세 발짝 걷는 것도 힘들어했고 우리가 만지면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일단 촉진해 본 결과로는 특별히 어디 부러지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지만 확실히 확인해 보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보기로 했다. 뿌꾸는 간호사 선생님 손에 들려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옆에서 다른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나는데 우리 뿌꾸는 평소에도 과묵하지만 병원에서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듯하다. 겁먹어서 그런 거겠지, 우리 불쌍한 뿌꾸.
엑스레이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정상. 특히 걱정했던 갈비뼈나 다리뼈 모두 정상. 혹 어디 금 간데라도 있나 싶어 자세히 봤는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단다. 뭔가 내가 꾀병을 부린 것만 같아 얼굴에 좀 열이 올랐다. ‘오늘 아침에는 진짜 뿌꾸가 아파하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는데요!‘ 했더니 엑스레이에 안 잡히는 타박상 같은 게 있었을 수 있지만 약을 먹거나 특별히 치료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단다. 어느새 뿌꾸는 뒷다리 아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보란 듯 꼬리를 힘차게 흔들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너 이 자식, 여유롭게 외출 나왔냐!
뿌꾸 피검사 한 지도 1년이 넘어서 기왕 병원에 온 김에 확인할 겸 피검사도 하기로 했다. 검사 다 끝난 줄 알고 약간 기운차린 뿌꾸가, 배신감이 어린 표정으로 다시 간호사 선생님에게 끌려갔다. 미안하다, 뿌꾸야, 혹시 모르니까 온 김에 검사는 다 해보는 게 좋겠어. 피를 뽑고 온 뿌꾸의 다리에는 작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피 뽑을 때도 말 한마디 안 하고 버텼겠지, 우리 뿌꾸. 간호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뿌꾸는 소리는 안 내는데, 안 움직이려고 힘으로 버텼다고 했다. 엑스레이 찍을 때도 피 뽑을 때도 안 하겠다고 버텼다고. 그 탓에 간호사 선생님은 뿌꾸와 옥신각신했는지, 옷에 뿌꾸 털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니 웃으면서 괜찮다고, 뿌꾸는 참 의젓하다고 해주시는 선생님이 정말로 천사 같아 보였다. 피검사 결과까지는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뿌꾸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이 검사 결과 항목을 보시더니 ‘아침에 밥을 안 먹었나 봐요?’ 하셨다. 아침에 뿌꾸가 뭘 아무것도 안 먹긴 했지. 그 부분 숫자만 살짝 표시가 나고 나머지는 모두 정상이었다. 다행이다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면 오늘 아침의 그 촌극은 대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생각으로는 강아지도 기분이 안 좋거나 놀라거나 하면 식욕이 떨어지고 그럴 때가 있다고, 뭘 보고 놀랐거나 약한 타박상을 입었을 수 있지만 특별히 치료를 요할 만큼 어디 다친 것 같지는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다만 고양이나 쥐처럼 주변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환경을 점검해 주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때 즈음 뿌꾸는 병원 안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구경하고 있었다. 뭐지, 이 강아지, 아침엔 분명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것 같아 보였는데.. 새벽에 나대다가 어디 부딪혀서 혼자 놀란 걸까. 졸지에 건강검진 한 번 한 셈이 되어서 다행이긴 하다만. 비록 내 지갑은 타격을 입었지만 뿌꾸의 건강에는 특별히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뿌꾸는 이번에도 차에 폴짝 올라탔다. 병원을 나와서 입마개도 풀어줬더니 웃는다. 뿌꾸야, 너 때문에 언니는 오늘 지옥에 떨어졌다 올라온 기분이란다. 휴가를 내서 본가에 내려온 터여서 뿌꾸의 상태에 따라서 휴가를 연장해야겠다, ktx 표도 변경해야지, 만약 수술하고 입원을 해야 한다면 뿌꾸 적금을 써야겠다 하고 별 생각을 다 했었다. 이제 8살이니까 뿌꾸도 어린 나이가 아니라서 건강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동물병원은 보험이 되지 않으니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 부분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하고. 어디선가 보니 강아지가 사람 말을 딱 한 가지만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말은 ‘아프다’ 였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나도 공감한다. 사랑해, 행복해 이런 말은 안 해줘도 좋으니 어딘가 안 좋다면 아프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반려동물들은 자신이 아파하는 모습을 주인에게 안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던데, 아프면 숨기지 말고 아픈 모습 그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빨리 발견해서 치료할 수 있도록. 20년도 채 못 살고 떠나는 강아지들인데, 살아있는 동안에는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愛された犬は来世で風となり
あなたの日々を何度も撫でる
사랑받은 개는 다음 생에 바람이 되어
당신의 나날을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문구인데, 찾아보니 ‘당신과 바람’이라는 일본 그림책에 나왔던 글귀인 듯 하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아프지만, 모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이 많이 사랑하고 조금만 슬퍼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