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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진 Jan 04. 2022

헤이런(黑人)과 투명인간

 중국어의 '헤이런'. 우리말로 옮기면 흑인(黑人)이다. 이 단어에는 무려 세 가지 뜻이 있다. 당연히 중국인과 피부색이 다른 흑인이라는 뜻이 있을 거고... 나머지 둘은 뭘까? 하나는 죄를 짓거나 그 밖의 좋지 않은 이유로 숨어 지내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호적에 이름이 없는 무적자(無籍者)이다. 


 오늘 호적에 이름이 없는 사람으로서의 헤이런을 떠올렸다. 그들은 등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신분증이 없다. 국가로부터 교육과 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며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아 직업을 얻는 것도 사실상 아주 힘들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돈이 필요하다. 중국은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더 낳은 죄로 벌금을 내지 않으면 그 아이는 곧바로 헤이런이 된다. 그 아이는 부모의 선택에 의해, 금전의 유무로 인해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남들과 동등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언젠가 배우에서 정치인이 된 일본의 야마모토 타로는 가두연설에서 일본에는 투명인간이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저임금 파견노동자부터 빈곤층, 노숙자, 장애인, 재일조선인 등은 투명인간이라며, 일본 사회에서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이들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중국의 헤이런이 있다면 일본에는 투명인간이 있는 것일까.  

 

 헤이런 혹은 투명인간은 한국에도 있다. 그리고 많다. 협력업체라는 말로 포장된 하청업체 직원, 파견직, 계약직, 펜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은 업체의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 노숙자 그리고 쪽방촌 사람들이 그들이다. 전염병이 창궐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모두와 동등한 시민으로서 대우받고 있을까. 대한민국에는 명백히 한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죽은 사람처럼 살 수밖에 없는(어쩌면 죽어도 상관이 없을지 모를) 중국의 헤이런, 일본의 투명인간과 다름없는 이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相依爲命-상의위명. 중국의 성어이고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가다'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굳게 의지할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있다면 그 수가 점점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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