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효진 Jan 26. 2021

코로나와 아름다움에 관하여

6900원의 행복

지난해 소비경향이 집콕소비에서 두드러져 인테리어, 배달, 인터넷통신, 가전품 등의 소비가 늘어났다고 한다. 대부분은 거리두기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짙어진 것이고 그 결과 삶의 질과 관련한 제품의 소비가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락을 같이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자들의 화장품 소비 경향도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는 듯 하다. 


외출시 마스크가 필수다보니 마스크착용과 관련한 화장품 성능에 대한 광고가 많다. 팩트나 쿠션같은 경우 마스크에 덜 묻어난다는 걸 강조하는데 이제는 아예 쿠션류보다는 혈색을 밝히면서 자외선을 차단하면서 자연스러운 피부를 표현해준다는 빛크림류가 눈길을 끈다. 연말모임이나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등 프로모션을 하던 색조화장품 중 립스틱보다는 마스크를 써도 드러나는 아이셰도나 아이라이너 제품이 많이 보였다. 최근에는 시각이 아닌 후각을 통해 이미지를 브랜딩하라는 전략의 향수브랜드도 눈에 많이 띈다. 


그런 와중에 나는 꼭 정수리 왼편에 흰미러 광산이 있는 것처럼 집중적으로 나는곳이 있는데, 거울을 보며 머리를 쓰러 넘기다가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스무살때 시끌벅적하게 형광 오렌지색 헤나 이후로는 거의 암갈색, 검은색 머리였는데 요즘 통 염색을 안했더니 조금 지나면 회색머리 여자가 될판이다 싶다. 머리카락은 또 왜이렇게 굵은건지 새치는 더 꼬불거리고 볼성사납게 모난정처럼 '나 여깄소' 삐죽 튀어 나오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작정하고 염색을 하기로 하였는데 비용도 그렇지만 한 공간에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과 머물러 있는 것도 부담이라서 염색약을 사다 염색하기로 했다. 마트에 가서 수많은 염색약 중에 무난하면서도 인상이 부드럽고 고혹적이게 보일것 같은 밀크브라운색으로 골랐다. 모델로 전지현 사진이 붙어있는데 아름다운 머릿결로 우아하게 눈을 마주친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나도 그렇게 예뻐보이면 좋으련만. 


사 놓고는 며칠을 흘려 보낸 뒤, 드디어 오늘 염색약을 뜯었다. 1제와 2제를 혼합하고 새치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도포를 해서 전체적으로 밀크부라운 여자가 되어 보기로 했다. 최근 머리를 단발로 잘라서 뭐 숱은 여전히 많지만 그럭저럭 양은 맞았고, 날이 추워서 그런지 염색이 잘 되지 않을까 싶어서 손 온기로 쓰담쓰담 예전 미용실에서 본 시늉을 해가며며 머리카락을 조금씩 잡아 문질러 넘기고 다음것을 문지르고 하면서 공들여 염색약을 발라주었다. 두세번 세심하게 빗질을 하고 점점 검은색으로 변해가는 머리색을 보면서 대충 시간을 흘려보냈다. 두피쪽은 체온때문에 먼저 염색이 된다고 했으니 끝쪽을 손으로 쥐고 있다가 마침내 되었다 싶어서 머리를 감았다. 검은 물이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을때까지 열심히 감고는 동봉되었던 컨디셔너로 마무리했다.  


허리가 아프고 아직 젖은 머리로는 염색의 성공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묘한 성취감 같은걸 느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은 기미도 있고 주름도 있고 속상하게 여기저기 속절없는 모공들도 보이는데, 그나마 흰머리는 없앴으니 적당히 화장을 해주고 나면 좀 볼만하겠지 싶었다. 긁지 않은 복권처럼 행복한 것도 없지 않은가.


마스크 없이 다니던 시절 꾸미는 것에 대한 관심사가 바로 눈에 띄지 않는 것들로 옮겨간 것 같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나니, 사람들은 이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바로 눈에 빡! 띄지는 않아도 답답한 피부를 생각해서 순하고 두껍지 않은 좋은 소재의 화장품을 바르게 되고 단정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만들어주도록 자연스러운 머리색과 은은한 향기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되었다. 


바깥을 다니면서 일상이 온통 바깥에 있다가 조금씩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더니 이제는 나를 바라보는 것에도 천천히 보아야 알아차릴 수 있지만 그 만족감은 더 큰 것같은, 속을 채우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으 아닌가 싶다. 


단돈 6900원으로 얻은 골져스한 머릿결을 귀에 꽂으며.


비로소 소장 장효진.


매거진의 이전글 사라진 집전화와 벽시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