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린이집에서 이번달 활동 주제를 적은 통신문이 왔다. 새해가 밝았으니 시간에 대한 개념을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게 시계도 만들고 시계를 보는 방법이나 시계를 구성하는 부속품 이름도 알려줄거란다. 그래서 집에 있는 시계나 시계 부속품, 시계관련 책이 있다면 보내달라고 써있었다.
생각해보니 집에 시계가 없다. 다소 놀랐다. 시계가 없다니. 손 닿을만한 곳에 항상 스마트폰이 있고 거실 TV나 서재 컴퓨터, 하다못해 주방 오븐에서도 시간을 쉽게 알 수 있으니 따로 시간을 알려고 벽시계나 탁상시계를 사 두지 않았다. 가끔 멋으로 차는 손목 시계가 있기는 하지만 화장대 서랍에 들어가 있어서 평소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몇몇은 시각이 맞지 않는다. 애당초 인테리어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벽에 무엇을 걸고 하는 것도 취미에 맞지 않기도 했다. 어쩌면 이게 좀 중요한 이유가 될지 모르겠는데 괘종시계는 말할 것도 없고 탁상시계에서 나는 자그마한 초침 소리도 거슬리는 게 싫다.
문득 집에서 사라진 건 집전화도 마찬가지다. 어디 신상을 적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집전화는 '없음'이라고 하거나 핸드폰 번호를 적어 둔다. 전화든, 문자든, 메일이든 전달해야 할 말이 있는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핸드폰을 사용하면 되니까 집전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1인가족부터 적은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정의 경우에는 유선전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간혹 가족수가 많은 집이라도 청소년 이후 아이들부터 부모님 세대까지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집전화 필요성이 줄어드는 것 같다.
전화기나 벽시계는 항상 집에 있던 물건이었다. 이런저런 디지털제품으로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분절된 초침 움직임을 읽어내야 하는 벽시계나 마침 그 공간 주변에 있을 누군가를 바꿔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 집전화기는 이제 아날로그가 아님에도 아날로그 취급을 받으며 인테리어나 감성을 위한 제품으로 밀려난 것이다.
어쩌면 아침 하나둘셋 프로가 하면 초등학생 지각확정이 되는 시간이고, 쾌걸 조로나 피구왕 통키를 다 보고 출발하면 학원을 지각하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저녁 먹으라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대략 여섯시 반이고 텔레비전 애국가가 나오는 시간까지 안자면 아빠에게 혼나는 시간이었던 시절엔 시계가 크게 의미는 없었다. 또 학창시절에는 굳이 묻지 않아도 시간을 알려주는 학교종이 있었고 시험감독관이 있었고 엄마 등짝 스매싱 알람이 있었고 사회생활할 때는 내 일이 끝나야 시간이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
좋아하는 아이네 집 전화번호를 우연하게 알아내고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다가 '여보세요'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수화기를 내려놓거나, 삐삐에 호출을 하면서 누가 대신 받을까봐 전화기 옆에 대기하던 시절이 있더라는 것도 전화기와 관련된 오랜 얘기다.
개인화된 제품으로 불편함이 없이 생활하던 시간이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위해 함께 써야 하는 물건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집전화는 아직 쓸 때가 안되었고 핸드폰이라면 장난감으로 대신하다가 좀 더 나중에 사주더라도 시계만큼은 하나 사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나중에 초등학교에서 수학시간에 시간계산이니 시침분침 각도 계산문제니 나올텐데 디지털 시계에만 익숙해져 있다면 낭패 아닌가.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