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숩포근함의 상징을 먹다
보릿고개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먹던 구황작물이라고 깎아내릴지라도 나에게는 고구마가 돼지김치찌개 다음으로 소울푸드다. 고구마라고 하면 삶든 굽든 채쳐서 튀기든 닭도리탕에 함께 조리든 모두 환영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발끝손끝 아릴정도로 추운 겨울, 동동거리면서 군고구마 장사 주변에 몸을 녹이며 군고구마를 살 때의 경험은 잊을 수 없다.
드럼통 안에서 장작이 활활타오르며 뿜어내는 연기도 그럴싸하고 고구마 장사가 고구마의 익힘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원통형 서랍을 열고 닫을 때 언뜻 보이는 빨간 불길이 멀리서도 일시정지 불멍을 때리게(?)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다. 그래서 그런지 배고프지 않아도 그 주변으로 발길이 닿게 만드는데, 거의 근처에 다다랗을 때에는 군고구마 익는 구수하고 달달한 향내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한봉지 주세요~'
마법에 홀린듯 내뱉는 소리다.
일단 주문을 하면 군고구마 마차 옆 좋은 자리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일 권리가 생기고, 잠깐이지만 도심 한복판에서 불장난을 하듯 불멍을 때리다가 근사하게 그을리고 꿀이 눌러 붙은 두 세개 고구마가 수제 종이 봉지에 담겨 진 채로 받아 들게 되면 그렇게 푸근할 수가 없었다.
병아리를 안기라도 하듯 식을새 없이 겉옷 안쪽에 품고 집으로 종종걸음할 때의 어스름한 저녁 길이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은 통 군고구마 장사를 찾아볼 수 없다. 산지에서 직접 박스째 사다 먹으면 2-3만원에도 먹을 수 있는 고구마에다가 군고구마 전용 냄비에 에어프라이어에 상시 아무때나 마음만 먹으면 저렴하고 간편하게 군고구마를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호떡이나 붕어빵처럼 전용 믹스가 필요하거나 번거롭지도 않고(그마저도 상품이나 가정용 믹스가 있다.) 식품 자체를 익힌 정도로 기술보다는 원식자재의 크기와 당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허들이 많이 낮아진 탓도 있다. 편의점에서 조차 맥반석 위에 올라앉은 군고구마를 한개에 이천원이면 손쉽게 사먹을 수 있다.
프리미엄 커피 믹스가 나오고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기가 나와도 카페를 찾는 이유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것이나 그 맛 때문만은 아닌것처럼 군고구마는 군고구마 장사가 만들어 내는 보고듣고맛보는 다양한 경험을 포함하는 총체적 서비스상품이었다.
추우면 추울수록 가장 추운 교차로로 나와 불을 떼고 그 속에 속 뜨끈하고 구수한 고구마를 익히는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이나 엄동설한 징검다리처럼 몸을 녹이는 난로를 만나는 고마움같은 것이었다.
그 추억때문인지, 작은 난로위에 얌전히 익혀지고 있는 저 호일에 쌓인 고구마가 불길을 온몸으로 맞고 나오는 전사같았던 그 시절 군고구마들에 비해 공산품처럼 느껴졌다.
늘 따끈하고 포근하고 배부른 고구마지만 그 시절 그 고구마가 먹고 싶어지는 한겨울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