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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n 14. 2021

벙커침대로 아이와 따로 잠 자기

혼자 자는 아이, 독립심을 키워줄 수 있을까

아이가 곧 만으로 다섯살이 된다. 한국나이로는 여섯살 아이는 이제 아기티를 벗고 어엿한 어린이가 되었다. 말만으로도 엄마 아빠 속을 긁을 수 있는 언어구사력을 습득했고, 자기 취향이 확고해서 아침 코디나 머리 스타일이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아이가 이층침대를 사달라고 했다. 남편은 장난감 수납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아이 방에서 재우자고 지난 해부터 이야기 해온 터라 '옳지 잘되었다.'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진주야 아빠 엄마가 이층침대 사주면 이제 진주 방에서 혼자 잘거야?"

라고 물었다.

아이는 당연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이층침대가 있으면 혼자 잘 거라고 대답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젖먹이 아이때 부터 따로 재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나라는 대개 어느정도 크기 전까지는 아이들은 안방에서 부모와 같이 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집은 중2 아이와 같이 잔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우리도 아이 낮잠 잘 때만 슬쩍 방문 열어둔 채 잠시 떨어져 있어봤지 밤잠은 엄마나 아빠 둘중 하나라도 옆에 아이를 끼고 잤다. 그런데 이렇게 쌩뚱맞게, 그것도 아이가 먼저 나서서 따로 잘 준비를 한다니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우리 부부는 폭풍 검색을 한 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잘 쓸 수 있을만한 벙커형 침대를 골랐다. 위쪽은 침대로 쓰고 아래쪽은 수납공간과 책상이 연결되어 좁은 방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침대 아래 공간을 아지트처럼 꾸미고 책상에서 한글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공부 습관을 좀 만들어볼 생각도 들었다.


침대가 들어올 공간을 만들면서 원래 장난감 수납장을 다른 벽으로 옮기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막상 침대를 들여놓고 보니 아늑하고 멋진 방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그저 임시 방처럼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보관하는 곳이었다면 마침내 이제는 아이가 머물면서 이런저런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된 것 같았다.


여섯살이 되면 그런 것인지 노란색이나 초록, 보라색을 좋아하던 아이가 분홍에 꽂혀서 키티 그림이 그려진 이불세트와 분홍 어린이 의자를 골랐다. 며칠 지나 이불이 깔린 침대를 보더니 신나서 고함을 질렀다. 그러더니 초저녁부터 누워서 잠을 자겠다고 올라가 대뜸 누웠다. 남편은 수면등을 켜주고 문을 조금 열어둔 다음 나왔다. 저러다 금새 나오겠지 싶었는데 아이는 잠잠했다. 그러면서 나는 높은 침대에서 아이가 버둥거리다 바닥으로 떨어질까 걱정이 되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동굴형 텐트라도 사다 놓을까 싶었지만 남편은 거추장스럽고 더울 거라면서 일단 둬보자고 했다.


아이가 걱정되고 금새 달려올거라는 생각으로 뒤척이다 잠들었다가 날이 밝았다. 그렇게 감격스러운 방독립의 첫날이 지나갔다. 아이는 자기 이부자리 정리도 완벽하게 하고 내려와서는 엄마아빠에게 잘 잤느냐고 물었다. 아이때문에 밤잠을 설치거나 고약한 잠버릇때문에 숙면할 수 없었던 것에서 해방된 것이 시원하면서 밤에 무섭다고 울면서 다시 엄마아빠를 찾아오지 않은 것이 은근 서운한 기분도 들었다.


열살 아들을 둔 지인은 이게 벙커침대 효과라고 했다. 아이들이 벙커침대로 자기만의 아지트가 생기면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이 혼자 자는 무서움을 이긴다는 것이다. 그 설렘 버프를 받아서 아이는 성공적으로 방 독립 스타트를 끊었고 우리 부부는 숙면의 밤을 선물 받았다.


물론 벙커침대 버프가 수그러들면서 며칠 지나 아이는 새벽에 엄마 아빠 찾아 안방에 쪼르르 들어와서 일어나면 어느샌가 함께 자고 있었다. 게다가 점점 더워지는 날씨 탓에 아이방까지 에어컨을 달지 않았던 것이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자기방에서 잠들었다가 습관적으로 새벽에 엄마아빠한테 찾아와서 잠드는 것을 빨리 고쳐주어야 겠는데 밤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자야 하는 걸 생각하니 좀 걱정이다.


어쨌거나 이번 계기로 집에서도 아이와 조금씩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또 그 시간이 아이 걱정보다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아이 스스로도 하루의 밀도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단순히 놀이하고 먹고 자는 것만 하던 아기가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과 직업, 환경,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기도 하고 엄마아빠와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기 시작한 것이다. 한글로 이름을 적고 숫자를 읽으면서 우리집 주소와 엄마 전화번호를 외우는 아이는 점점 세상에서 하나의 사람으로 조금씩 독립해 나가고 있다.


자기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 세상에 나가서 자기 스스로 설 수 있는 책임감이나 자신감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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