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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n 16. 2021

스팸문자는 성실하기도 하지

하루 혹은 한달 일상의 리마인드

어김없이 오늘 아침에도 스팸문자가 도착했다. 

'ㅁ월ㅁ일 OO마트 세일' 

매일 오전 열시정도에 도착하는 오늘의 세일품목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으나 제목만큼은 미리보기 화면이나 다른 문자들을 찾다가 스치거나 하면서 만나게 된다. 아침이 익어가는 시간 때인 10시면 아마 전업 주부들이라면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가고 밀린 아침 일과를 대충 정리한 때라서 커피라도 한잔 마시는 시간일 가능성이 높다. 회사다니는 사람들도 오전 필요한 업무는 쳐내고 한숨 돌리며 믹스커피라도 탈 시간일테고. 


15일과 매월 마지막 날 아침에도 문자가 온다. 빵집의 특별 세일 알림 문자다. 그날 빵을 사면 구매 금액의 최대 50% 쿠폰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맛있는 크루아상이 유명한 빵집인데 그 문자를 보면 자동으로 초코 크루아상과 버터앙샌드를 사러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마구 치밀어 오른다. 사실 50%쿠폰은 50%할인이 아닌데다가 그 다음 할인행사 전까지 그 쿠폰을 써야만 하는 숙제를 안기는 하지만 말이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마켓은 자기네 고유 어플을 만들어 두고 보기도 편하고 결재나 포인트 쌓기도 편리한 고차원의 마케팅을 실현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실상은 어플은 경품 타면 바로 지워버리기 일쑤다. 반면에 공식적인 업무 아니면 이제는 잘 쓸 데 없는 문자메시지는 이런 스팸 문자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들 스팸도 거부 신청을 하면 안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중 이렇게 동네 슈퍼와 빵집 스팸은 거부신청을 하지 않고 두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카톡도 아니고 어플 알람도 아닌 스팸문자들이 정겹기까지 하다. 예전 2G폰 시대부터 지역 가게 마케팅으로 활용되었던 문자 광고는 그 가게의 포인트를 쌓기 위해 회원등록을 하고나면 어김없이 날라온다. 분명 핸드폰 문자도 디지털의 산물인데 워낙 오래된 것이다보니 아날로그의 향기가 느껴지는 가 보다. 이사오기 전 동네의 정육점은 명절마다 특별 패키지 선물 소식을 전해오기도 하고 진료를 받았던 치과에서는 정기 점검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핸드폰을 새로 샀던 가게에서는 새로 핸드폰을 좋은 값에 바꿔주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들 가게들은 내 생일이 되면 한꺼번에 생일 축하와 별 쓸데 없는 혜택을 주겠다는 문자를 우루루 보내오기도 한다. 직접 한땀한땀 내가 누군지 보내오는 문자들은 아닐지언정 받아보는 내가 그 문자들의 행간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모습과 그들 가게의 지금 상황과 지금 시간이나 한달 중 지금이 어느 즈음에 와있는가, 그리고 내가 잘 살고 있는가를 각성하게도 되는 것이다.       


매일 열시에 울리는 오늘의 쇼핑찬스에서는 그 계절에 맞는 과일을 선보이고 운이 좋으면 특가 상품으로 그날의 메뉴가 뒤바뀌기도 한다. 가끔씩은 어린이날 방문고객들에게 과자꾸러미를 선착순으로 준다는 문자가 날라올 때는 산타클로스가 보낸 문자만큼 반갑기도 하다. 


매월 보름과 마지막 날 보내오는 빵집의 문자는 한달 한달 지나가는 일과에서 다시 또 이날이 돌아온 것에 대해 고삐를 다시 잡게 만든다. 영락없이 이들 문자가 다시 왔다는 것은 꼭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나하나의 빵이 숙성되는 시간만큼이나 나의 시간들이 값진 것인지 뒤돌아 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의 매 보름마다 찾아오는 이 스팸문자를 반갑게 맞는지도 모른다.


스팸이라는 회사는 마케팅 부서가 너무 성실하게 일을 해서 성가신 문자나 메일에 자기네 회사 이름을 붙여버리게 되었지만, 가끔씩 선택적으로 몇몇 문자는 스팸문자라도 괜찮은 것들이 있기에 여전히 곳곳에서 계속해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애시당초 나는 스팸도 좋아하고 말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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