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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환 Jan 01. 2019

6# 자본주의의 속성과 노동의 가치

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마치고 나면 일을 해야 하며 일을 하는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내가 직접 회사를 세우고 경영하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누군가가 만든 회사에 취업을 하는 방법이다. 보통은 취업의 형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므로 대부분 노동자가 되며 노동자라고 해서 꼭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일을 하는 직업만을 말하지는 않으며 회사의 오너가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취업을 하고 노동자가 되면 필연적으로 사장이라는 상하관계에 놓인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장을 달리는 고용주, 경영자, 사용자라고도 하며 노동자에 대한 고용 권한을 가지므로 고용주와 노동자 간에는 자연히 지배관계가 형성된다. 


 시대가 변할지라도 인류가 살아가는 근본 양식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식량, 의복, 주거 등의 생필품과 다양한 편의품을 필요로 하며 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재료, 도구, 시설 등의 자본과 이를 취급해 생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노동력이 있어야만 한다. 


 자본과 노동력은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이 둘은 평등관계가 아닌 종속관계로 존재한다. 노동자는 자본에 속해 노동을 통해 생산에 기여하지만 발생한 생산물은 자본을 소유한 이가 모두 가져가며 노동자는 정해진 임금만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생산관계는 각 시대마다 계급관계를 형성해왔다. 노예제도 안에서 노예는 주체성과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주인이 소유한 하나의 생산수단으로 취급되었다. 주인이 소유한 생산기반 안에서 노동을 통해 생산물을 창출하지만 생산물의 전부와 노예 그 자신과 자식들까지도 주인의 소유물이 된다. 봉건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지라는 생산기반을 소유한 영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생산물을 만들어내지만 그 대부분은 영주가 가져가고 일부만을 농노가 가질 수 있었다.    

 

 봉건제 이후 등장한 자본주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갖고 자신의 노동력을 원하는 곳에 팔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노예와 영노에 비해 자유로워졌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에 진정한 자유라 말할 순 없으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을 소유한 이들을 자본가라 부르며 여기서 말한 자본이란 기업을 뜻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그중 하나는 노동의 지위와 가치에 관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대량생산을 위해 분업화된 생산 환경을 만든다. 한 명의 노동자가 혼자서 바늘을 만든다고 했을 때 하루 동안 만들 수 있는 바늘의 개수는 20개에 불과하지만 생산 공정을 18단계로 나누고 18명의 노동자가 바늘을 생산하면 하루 4만 개의 바늘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바로 분업의 효율성이다. 하지만 분업체계 하에서는 개인의 전문성과 노동의 가치가 온전히 인정되지 않는다. 재료 및 도구와 같은 자본을 활용하여 상품이나 재화를 오로지 혼자서 만들어내는 고도의 숙련된 노동자들을 장인(匠人)이라 한다. 장인에게 자본은 그저 생산수단일 뿐이지만 반대로 자본주의 분업체계 하에서는 자본에 종속되어 하나의 생산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노동자는 노동의 임금 가치를 자본가에게 온전히 주장할 수 없게 된다. 분업체계 하에서의 노동은 단순노동이므로 얼마든지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자본가가 이익을 노리는 곳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 자본가는 끝임 없이 이익을 좇고 그들이 이익을 노리는 곳에서만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계속해서 이익이 창출되어야만 자본가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자본가가 이익을 노리는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고 대비할 때 나의 필요성과 노동가치는 상승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금융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소득창출을 가능케 하며 이렇게 발생한 소득을 불로소득이라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금융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은 기업에 속해 임금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동산이나 주식투자와 같은 금융에 기대를 건다. 금융은 생필품이나 편의품 등을 생산하는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한다. 부가가치는 오직 노동으로만 생산된다. 그렇다고 금융이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융은 소비를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은행에서 받는 대출도 소득의 한 형태다. 다만 노동이 아닌 불로소득이기에 부가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하지만 상품의 소비를 촉진하는데 기여함으로 경제순환의 한 축을 담당한다. 하지만 통화량을 늘려 인플레이션과 같은 물가상승의 원인이 되므로 대출과 소비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하면 개인의 파산은 물론 언젠간 거품이 꺼지고 경제공황을 야기하게 된다.

   

 필자는 땀 흘려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손에 쥐는 노동의 대가만이 진정한 소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노동을 통한 소득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에 있다. 수억이나 되는 집을 한 채 마련하려면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으로는 수십 년이 걸린다는 언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해야만 이 상황이 바뀌는 것일까. 


 이는 생산기반인 자본의 속성이 변해야만 이 상황도 바뀔 수 있다. 즉 기업의 변화만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와 같이 공장에서 일을 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이 전부이던 시대가 아니다. 이제는 아이디어가 이윤을 만들어내는 지식산업사회다. 과거엔 노동가치가 상품의 생산량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평가기준으로 했다면 지식산업사회에서는 3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바로 <노동 정도, 매출, 미래가치>이다. 노동 정도는 시간, 신체, 감정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과거엔 이 가운데 노동시간만이 노동의 가치로 여겨졌다. 노동시간의 연장은 흔히 잔업 또는 초과근무라고 하는데 정해진 근무시간은 8시간이지만 할당된 일이 많아 야근을 하는 경우나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 등이다. 이는 초과수당이라는 형태로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함이 마땅하다.     


 더불어 이제는 신체 노동과 감정노동도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체 노동은 뜨거운 용광로에서 일을 하는 제철 생산직이나 건설노동자 등이 대표적인데 일 자체가 신체적으로 고되고 위험하기에 그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여 임금을 정해야 한다. 감정노동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비례한다. 흔히 고객이라는 대상을 상대하는 직업군으로 텔레마케터, 관광업 등 서비스직 종사자들이다. 우리는 종종 극심한 감정노동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하거나 우울증에 빠졌다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얼마나 극심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지를 방증하는 사건들이다. 따라서 이 역시 노동의 가치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매출은 상품의 판매를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직업군을 말하는데 이에는 영업직, 판매직이 속한다. 생산된 상품을 소비자에게 팔면서 곧바로 이익을 발생시키는 이 직업군에 속한 이들은 매출액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업이나 판매를 하더라도 계획 수립과 판매행위의 과정을 거치므로 노동시간을 들이게 되며 그 과정에서 거래대상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이 더해진다. 이 모두 노동의 가치로 인정되어야 한다. 


 미래가치는 머지않아 소속된 조직의 가치를 높여 막대한 명예와 부를 창출하는 가치 노동을 말한다. 이에는 전략기획이나 마케팅 그리고 학교 교사와 같은 직업군이 속한다. 학생을 가르치는 학교 교사는 수익창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훗날 세상을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는 백년대계를 짊어지기에 엄청난 미래가치를 창출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미래가치만 아니라 개성 넘치고 다양한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오는 심적 부담과 스트레스는 곧 감정노동이며 더욱이 교권이 떨어진 현재이기에 교사에게는 이러한 노동 정도도 평가에 더해져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예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엔 수많은 직업이 있으므로 폭넓게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지금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함께 공부하고 뛰어노는 주변의 친구들이 시간이 흘러 배움을 마치고 사회의 일원이 되면 저마다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와 내가 갑을관계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사회는 냉정하다. 생존을 위해 만나는 사회관계는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는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평가와 거래가 주를 이룬다. 내가 상대에게 내보일 밑천이 없으면 평가절하 되고 밑천이 없기에 거래할 기회도 잃게 된다. 이른바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밑천을 만들고 싶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명확히 세우고 지금부터 실천해야 한다. 수없이 많이 들어왔겠지만 학생의 신분에서 가장 빨리 밑천을 만드는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면 직업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임금도 많이 받는다. 차라리 회사를 세워 고용주가 되고 싶은가. 회사를 만드는 것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투자를 받아 회사를 세우려 해도 사업의 내용보다도 그 사람의 학력과 학벌을 따지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해서 회사를 세우더라도 직원들의 능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동기부여와 계속적인 이윤을 창출하려면 사람을 다루는 능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방법들은 교과서에 실려 있다.     


 교과서에는 지나온 과거의 성공사례와 문제점이 모두 나와 있다. 성공모델의 단점을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매일 가르침을 통해 주어지고 있음에도 학업을 멀리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버리는 것과 같다. 앞으로 고용주가 될지 노동자가 될지 모르지만 고용주가 된다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의 가치를 평가해야 하며 이는 곧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일이자 생산성 향상으로 결국 고용주에게도 이로운 일이 됨을 잊어선 안 된다. 반대로 취업을 통해 노동자가 된다면 회사에 기여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하며 이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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