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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환 Jan 01. 2019

7# 복지의 두 얼굴

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한 지하 셋방에 거주하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못 이겨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동반 자살한 사건이다.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어 노동력을 상실한 상태였으나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으로 사회적 논란과 법안 개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으며 마침내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15년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국가들 안에는 세 모녀와 같은 빈곤층은 항상 존재한다. 기회의 자본주의 땅에서 가난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개인의 능력 탓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하는가. 이 논쟁은 자본주의 도입 이후 어느 국가에서나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계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논리 대립이 계속되다 보면 결국은 복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복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보통은 복지가 잘 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복지가 너무 강하면 국가는 도탄에 빠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40%에 가까운 중산층을 낳으며 호황을 누리던 아르헨티나는 90년대에 들어서 쇠퇴한 경제로 지금도 빈국으로 분류된다. 아르헨티나 29대, 41대 대통령을 지낸 페론 대통령은 1946년과 1974년 두 차례에 걸쳐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집권했다. 노동자층의 지지를 받았기에 이들을 위한 임금향상, 노조 활성화, 산업 국유화 등의 정책을 펴게 된다. 최고의 복지국가는 공산국가란 말이 있다. 산업의 국유화는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바다. 모든 생산시설을 국가가 소유함으로써 빈부가 존재하지 않는 부의 평등을 실현하자는 주의이며 이와 유사한 페론의 정책은 반대세력에 의해 복지 포퓰리즘이라 불렸다. 


 포퓰리즘이란 선심선 인기영합주의를 말한다. 다수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선심선 복지정책의 남발로 종국에는 국가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함을 의미한다. 복지를 하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산업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데 사용해야 할 예산이 복지에만 집중되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나중엔 모두가 거지꼴을 면치 못한다. 당장 수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아 안이한 생각으로 무감각하게 긁어대는 신용카드와 같은 것이다. 페론 대통령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결국 아르헨티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도탄의 수렁으로 빠졌다.     


 이러한 세계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보수는 복지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며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복지가 아닌 진정 복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선별하여 복지를 해주자는 것이다. 이로써 복지예산의 절감이 가능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충분한 복지를 해줄 수 있게 된다는 논리다. 


 반면 진보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먹는 것, 배우는 것, 의료혜택은 국가차원에서 누구에게나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바로 그것이며 선별적 복지를 할 경우 발생하는 낙인효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낙인효과란 복지혜택을 받는 이들은 가난하고 무능력한 사람들이란 사회적 시선과 편견이 주어지는 부작용을 말하며 보편적 복지는 누구나 혜택을 받으므로 낙인효과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복지혜택 주어지므로 막대한 복지예산을 필요로 하며 이로 인해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줄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교육은 향후 취업과 소득 수준을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에 무상교육은 누구에게나 교육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충분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돈이 없어 배움의 꿈을 접는 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한편 ‘문재인 케어‘라 불리며 19대 정부가 추진했던 무상의료 정책인 건강보험 전면 급여화는 복지의 성격과 본질을 잘 드러낸 시례다. 사회보험 가운데 하나인 건강보험은 가입자가 급여항목에 대해 병원 진료를 받으면 개인은 30%가량의 진료비만 내고 나머지 70%의 진료비는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여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병원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공단의 재원이 고갈되어 병원이 청구한 진료비를 제대로 주지 못하게 된다. 청구한 금액의 절반 내지는 70% 정도만 받고 있던 것이 병원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모든 진료항목을 급여화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병원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이렇게 줘야 할 것을 주지 않으면서도 현상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의사 집단은 사회 기득권층으로서 이미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 그래도 된다는 여론에 기인한다. 이렇듯 복지는 누군가에게서 빼앗아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특성을 갖는다.     


 복지는 가난하고 어려운 계층을 돕는다는 인도적이고 공익적인 취지도 있지만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복지는 얼마나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며,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수준이 아니라 재활과 노동의 의지를 복 돋아 주는 복지정책이라면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려면 유효수요가 증가해야 한다. 


 유효수요란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있는 가를 말한다. 그러려면 만인이 동등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부의 불평등이 조금은 해소되어야 하며 이를 실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복지이다.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복지에 필요한 예산을 걷는 과정에서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나타난다. 소득 수준에 따라 과세율을 차등하여 세금을 걷고 이를 다시 보편적 복지를 통해 분배하면 그 자체로 빈부격차를 조금은 완화하고 최저 임금자 및 노동력을 상실한 이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말 그대로 생산성 약화를 불러온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국가가 삶을 보장해주면 노동 의지와 재활의지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번째는 완전고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용은 유효수요를 늘린다. 돈을 벌기에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는 직업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여러 사정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이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키고 취업의 길을 열어주면 고용이 증가하고 유효수요가 증가함으로써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잘 이뤄지면 복지예산을 투여할 빈곤층이 사라지니 오히려 복지예산도 점차 줄어드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즉, 올바른 복지의 목표는 소득 재분배를 통해 현재의 극심한 사회 양극화를 막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며 직업교육을 통해 고용을 높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회보장제도는 국민 모두가 값싸게 공동구매로 들어 놓는 보험과도 같다. 현재는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영원히 밝은 미래만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업에 실패하고, 주식에 돈을 날리는 등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겪게 된다. 바로 그때 재활의 의지를 갖게 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 장치가 바로 사회보장제도인 복지다. 혹자들은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먹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능력에 따라 자연 발생하는 빈부의 격차는 어쩔 수 없다고들 말한다. 분명 맞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대안이 없는 현재로선 우리는 자본주의를 지켜야만 한다. 당장 살기 어렵다고 또는 시작이 불공평하다고 공산주의를 다시 꺼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우리는 고장 난 자본주의를 다시 고쳐 써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사회보장제도인 복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복지는 정부가 그 역할을 하므로 큰 정부가 불가피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말한 큰 정부란 종전의 큰 정부를 지칭하는 개념과는 다르다. 역사를 통해 큰 정부는 자본주의엔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반대로 빈부의 심화라는 작은 정부의 단점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의 큰 정부는 시장개입이 아닌 사회보장제도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개입하는 복지정부를 말한다. 경제는 시장자유에 맡기되 자유 시장에서 발생하는 사회 양극화와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완전고용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복지가 필요 없어지게 하는 그런 정부가 나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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