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모두의 정치'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한 구의 시신이 떠올랐다. 얼마 전 실종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었다. 앞서 3월 15일에는 부통령 선거가 있었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되어야 할 부통령 선거는 이승만의 재집권 야욕에 의해 부정으로 이뤄졌다. 개표과정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암전 사태와 개표 결과 유권자의 수보다 투표자수가 더 많은 기상천외한 부정선거가 저질러진 것이다.
이에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마산시민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벌어졌고 이승만은 총격과 폭력으로 이를 강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고 많은 시민들이 공산당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는 등의 참상이 벌어졌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마산시민들은 주춤했고 그렇게 시위가 진압되는 듯했으나 한 달 뒤 발견된 김주열의 싸늘한 주검은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꾼다. 보통의 시신이었다면 몰랐을까. 김주열의 시신은 한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이었다.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가했던 김주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정통으로 맞아 죽었던 것이다. 어린 학생이 죽임을 당한 것도 모자라 시신이 바다에 버려진 사실을 알게 되자 온 시민이 분노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4천 명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는 시위를 했다. 이후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피 흘리는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를 알게 된 전국의 시민들이 다음날인 4월 19일 총궐기하여 “이승만의 하야와 독재타도”를 외쳤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지만 이승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를 무력 진압하려 했다. 4월 25일 독재정권의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서울 시내의 대학교수 300인은 시국선언을 했고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에 힘을 얻은 시민들은 다음날인 4월 26일에 더욱 거세고 완강하게 시위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이승만은 마침내 ‘국민이 원하면 떠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하야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혁명인 4.19 혁명이다. 전 국민이 총궐기한 1960년 4월 19일을 기념하여 혁명일로 정했다. 기존의 정권을 강제로 몰아내고 새롭게 교체하는 과정을 혁명 또는 쿠데타라고 한다. 혁명의 본래 의미는 기존 제도를 뒤엎는 것을 말하지만 제도는 유지하면서 집권세력을 몰아내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혁명과 쿠데타 이 둘은 정권을 교체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주체는 다르다. 쿠데타는 군사력을 동원한 다른 세력이 기존 정권 세력을 몰아내고 새롭게 집권하는 것이지만 혁명은 시민에 의한 정권교체를 말한다. 시민이란 투표를 통해 권력을 창출하는 주체이자 주권의식을 가진 민주사회의 구성원을 말한다. 그래서 시민이 주체가 되는 혁명을 시민혁명이라고 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혁명이라는 점에서 4.19 혁명은 한국사적 의의가 크다.
2017년, 대한민국에 두 번째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촛불을 손에 든 수천만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박근혜의 하야를 외쳤다. 대통령의 비선 측근이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고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기망한 것도 모자라 이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한 대통령을 향한 분노 서린 외침이었다. 이미 국회에서의 탄핵안이 가결된 상황이었고 시민들의 하야 촉구는 계속되었지만 박근혜는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2017년 3월 10일 마침내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박근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 국정농단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비선 측근인 최순실이 자신의 딸인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승마특기생으로 입학한 한 여학생과 그 부모에게 총장이 머리를 조아리고 심지어 부모는 지도교수에게 막말과 삿대질을 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명문대 입학을 애들 장난쯤으로 여기는 모녀의 행각에 분노했고 이들이 도대체 누구 길래 이럴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이에 언론은 집요하게 이 사건을 파고들었고 마침내 최순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4.19 혁명과 촛불 혁명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이라는 점은 같지만 그 전개 양상은 전혀 다르다. 4.19 혁명이 완수되기까지는 독재 권력이 휘두른 폭력에 의해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고 이는 민주화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반면 촛불 혁명은 민주화가 성숙된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잘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단 집회의 명분이 민주질서에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집회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를 한 곳에 모은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정치상황을 모르고 있던 많은 시민들에게 현재 권력의 부정과 부당함을 알리는 계기가 되며 그 자체로 더욱 많은 시민의 힘을 모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집회시위는 집권세력에게는 정권유지에 위협이 되므로 진압이든 대화든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민주화가 정착된 국가라면 정권은 시민과의 대화에 응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개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설령 폭력진압을 하지 않더라도 소통을 하지 않는 정권은 시민이 위임한 권력의 정체성을 망각한 것이며, 만약 폭력으로 억압하려 한다면 집회시위의 목표는 개혁이 아닌 혁명으로 뒤바뀔 수 있다. 개혁과 혁명 모두 현재의 정치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시민들의 염원이지만 그 결과는 다르다. 개혁은 정권교체와는 무관하며 정책의 변화를 통해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다. 반면 혁명은 기존 제도 위에 군림하던 정권 혹은 기존 제도 자체를 뒤집어 시민의 뜻을 관철하려는 정치행위다. 군주 인수(君舟人水) ‘백성은 물이요 군주는 물 위에 떠있는 배’라는 뜻으로 백성이 화나면 물 위의 배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군주와 백성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다. 이만큼 혁명의 원리를 잘 표현한 성어(成語)가 또 있을까.
정권교체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은 개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라서 혁명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반대로 불법 쿠데타로 평가되기도 한다. 박정희의 5.16 군사정변도 쿠데타가 아닌 정변으로 불리는 까닭도 사람들의 정치성향에 따라서 그 평가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정당성을 갖는 정권교체는 선거를 통한 방법이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룬 9차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로 시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직접민주제를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럼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닌 촛불 혁명은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당성을 갖는다. 촛불 혁명은 기존 제도를 뒤엎는 말 그대로의 혁명은 아니며 단지 권력자를 몰아내는 수준에 그친다. 오히려 구제도를 무너뜨리는 혁명이었다면 정당성을 논할 필요도 없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구제도 안에서 만든 법적 정당성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단지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외쳤을 뿐 실제적 작용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국회와 헌법재판소다. 즉 헌법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의한 탄핵으로 진행된 정권교체이므로 촛불집회는 민주적 정당성을 충분히 갖는다. 그저 탄핵을 성공시킨 정치세력이 이를 시민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칭송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촛불 혁명이라고 말할 따름이다.
촛불집회는 광장에서 이뤄지므로 광장정치라고도 하며, 광장정치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헌법에서 보장한 집회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확인하는 일이고, 배를 뒤집기 전 국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정치권에 알리는 경고의 메시지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의 뜻이 가장 크다는 민주공화정의 정신에 부합되는 시민의 정치참여 모습이자 직접민주제의 한 형태다. 또한 촛불집회는 국민주도 정치의 모습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의해 시민이 이끌려가는 모습이 아닌 반대로 시민이 정치인을 선도하는 모습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참모습이 아닐까. 실제로 촛불집회 현장에는 시민의 염원에 부응하고자 하는 많은 정치인들과 유명 인사들이 참여했고 매서운 겨울을 시민들과 함께 이겨냈다.
촛불집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비폭력 평화집회로 이러한 의미에서 촛불집회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평화롭게 정권이 교체된 완성의 혁명이며 세계 최초의 평화혁명이기도 하다. 비록 4.19 혁명은 피로 물든 혁명이었지만 건국 초기 민주화가 덜 진전된 시대 상황임을 감안하면 그저 안타까운 역사일 따름이다.
권력을 상대로 집회시위에 나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용기 있는 행동이자 그 자체로 애국이다. 조국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집회시위에는 그 명분이 있고 정당한 명분을 가진 시위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설령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 또한 민주사회의 일원이 가져야 할 덕목이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란 이름의 나무는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뿌리는 수많은 피를 양분으로 한다.’고 표현한다. 이는 이름 모를 수많은 선대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성숙한 오늘날의 민주사회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음을 의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