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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비버 Dec 16. 2024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꽤나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었던 덕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 잠시 누렸던 그 풍족의 맛이 평생 인생의 족쇄처럼 나를 따라다니게 될 줄은.


국민학교 3학년의 가을, 그 풍요로움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빠가 운영하시던 사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차라리 IMF 같은 시대적 문제였다면 좀 덜 비참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사업 실패는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나는 그때부터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것 같다. 결핍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고, 천천히 떠나갔다.

어쩌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산 시간은 고작 열 살까지였는데, 어떻게 그 짧은 기억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을까? 

아마도 그때 맛본 '돈의 맛'이 너무 달콤했나 보다. 중독성 있는 디저트처럼 한 번 맛보면 자꾸 생각나는 그런 것처럼.


최근에 본 유튜브 영상 중, 어느 유튜버가 채널을 접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는데 깊이 공감이 되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유명세를 얻으려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결국 유튜브 때문에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촬영과 편집에 소요되는 시간, 소재 고갈과 광고 촬영 등의 스트레스로 주객이 전도되어 결국 작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글쓰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만 유튜브를 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글을 쓰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묘하게 나와 닮아 있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오히려 지금의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 나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탐닉하는 것을 좋아하며, 말하기를 좋아하는 인문학적 성향이 다분한 아이였다. 

책을 읽다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야기를 지어내고 말하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어려서라고 치부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좇는 일과는 거리가 먼 성향의 아이였다.


엄마가 나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다.

"우리 집은 재수는 없다"

반드시 현역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엄마의 그 한마디가 이렇게 오랜 시간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대학 진학부터 취업, 결혼 후 지금까지도 나는 늘 인생의 각 단계를 '한 방'에 통과해야 한다고 믿었다. 

실패는 낙오라 여겼고, 내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돈이 되는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인생의 선택지를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것 단 두 가지만을 놓고 선택했던 것 같다.


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사학과를 나오면 밥벌이하기 힘들다는 말에 진학을 포기했다. 사학과로 취업이 잘되려면 교사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교사는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성적에 맞추어 법대 진학을 선택했다. 

고시는 성격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안정적이고 급여 수준이 괜찮은 금융권 취업을 택했다. 


돈 되는 선택으로 시작한 나의 사회생활은 매달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마취제가 되어 주었다.

팍팍하고 힘든 사회생활을 버티기 위해 집어 들었던 자기 계발서에서 회사 생활로는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없으니 투자공부를 해야 한다고 해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부동산 공부를 했고, 투자도 했으며, 어느 날 강사가 되어 강의를 하고 있었다.

뭔가 허전하고 힘들 때마다 '돈을 더 벌면,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했다.


금융치료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거다. 다음엔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초반에는 명품과 여행으로 충족되던 공허함은 어느 순간 투자를 통해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마련하고 난 이후에도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왜 그토록 돈을 버는 일에 집착했을까? 어쩌면 그것은 어린 시절 잃어버린 안정감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돈을 좇아 해온 선택들이 쌓이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오히려 더 멀어져 갔다. 

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내 안의 진짜 꿈과 가치관은 어느새 희미해져 버렸다.


요즘 나는 블로그에 재테크 관련 정보성 글이 아닌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자마자 이웃 삭제가 일어났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물갈이가 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정보성 글을 쓸 때는 힘을 주고 썼다면, 지금은 그저 내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내면 되니까 부담도 없다.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결코 돈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물질적인 성공을 좇느라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외면해 왔다는 것을. 

그래서 늘 무언가 허전하고 부족했다는 사실도 함께.


이제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보려고 한다. 돈은 덜 벌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매일매일 내가 행복한 일들로 일상을 채우는 인생, 상상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만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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