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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jeong Feb 21. 2018

선입견을 깨는 공간 디자인

Glossier 뉴욕 소호 쇼룸 방문 후기

화장품 매장에 딱 들어섰을 때, 처음 느끼는 기분은 무엇일까?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는 제품들, 피부며 몸매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모습의 모델 사진들, 얼굴에 난 여드름이 선명하게 보일 것만 같은 백색 조명,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는 직원의 시선. 내가 가봤던 화장품 매장들 중 대부분이 나에게는 조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공간이었다. 마치 내 결점을 더 눈에 띄게 해서 제품을 사게 만드는 곳 같았다. 그래서 화장품을 살 때는 온라인이나, 올리브영, 왓슨스 같은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드럭스토어를 이용했다. 꼭 특정 매장에 방문해야 할 경우에는 사야 할 제품만 빠르게 사고 나왔다. 매장에서 겪은 경험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화장품 브랜드가 매장은 판매 공간으로만 취급하고 고객들은 그저 돈을 쓰는 존재로만 여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잡혀 있었다. 이런 내 선입견을 깨고 화장품 매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공간을 뉴욕에서 경험할 수 있었는데, 바로 뷰티 브랜드 'Glossier(이하 글로시에)'의 쇼룸이었다.


출처: allure


이 공간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를 공간에 잘 녹였기 때문이다. 글로시에가 쇼룸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첫 번째 목표는 '소통'이다. 어느 브랜드에서 내세울 법한 흔한 말이지만, 글로시에는 타 브랜드에 비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브랜드와 고객이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보다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또래 친구 같은 관계로 설정했다. 그래서 글로시에는 여타 브랜드와는 다르게 제품으로 쇼룸을 빼곡하게 채우지 않았다. 대신에 브랜드 컬러인 연한 분홍색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활용해 매장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공간과 편안한 소파를 두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제품을 살 생각이 없더라도 지나가다 들러서 사진 찍고 구경하며, 가볍게 놀다 갈 수 있는 '아지트', '놀이터'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또한 글로시에는 브랜드 대 고객뿐만 아니라 고객끼리도 소통이 일어날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했다. 상체까지 올라오는 높이에 너비가 좁은 다이 몇 개를 띄엄띄엄 놓고 그 위에 제품을 올려두고 사용할 수 있게 했는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이를 중심으로 모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제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가구 배치에 간단한 변화를 주어, 사람들이 뷰티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일종의 '뷰티 커뮤니티'를 만들어낸 셈이다.



글로시에의 두 번째 목표는 여성들이 건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결점을 숨기고 최대한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많은 화장품 브랜드들이 제품을 광고할 때, 자사의 제품을 통해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글로시에는 모든 사람이 다르게 생긴만큼 아름다움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글로시에의 이러한 철학 또한 쇼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쇼룸 입구 바로 옆에 'YOU LOOK GOOD'이라고 적힌 거울이 있는데, 이는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던 상관없이 아름답고 좋아 보인다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출처: Glossier

또 나이, 피부색, 몸매 등이 서로 다른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누드 위에 'BODY HERO'라는 문구가 적한 사진들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바비인형같이 완벽한 모습의 모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몸을 사진에 담아내어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바디 케어 제품을 위한 홍보 문구인 'BODY HERO'가 마치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을 감추지 말고 지키자'는 글로시에의 슬로건처럼 느껴졌다.


글로시에 쇼룸을 방문하고 공간 디자인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브랜드에 대한 고민 없이 당장의 이익만 보고 만들어진 공간은 고객에게 그 공간에 대한 안 좋은 감정뿐만 아니라, 브랜드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브랜드의 철학이 잘 반영된 공간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선입견을 깨고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게 만든다. 따라서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고, 경험하고, 판단하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고찰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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