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무릎의 상태는 전날같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전날엔 무릎을 굽히고 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서 다리를 절룩이며 다녀야 했다. 그렇다고 이날은 다리가 자유로운 건 아니었으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릎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날은 영화제에서 내가 연출한 영화의 GV(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차가 없기에 영등포가 있는 영화제까지 강남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했다. 평지에서 걸을 땐 약간의 고통을 감수해야될 정도였는데 계단을 내려가는 건 고통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지하철은 계단도 많으니 에스컬러이터가 없는 곳에서는 엉성한 걸음으로 고통을 참으며 내리걸음을 해야했다. 꼭 이런 고생을 유발하면서 까지 장거리를 달려야 했나라는 생각도 하지만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한 것이기에 더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무릎은 너무 아팠다.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내가 풀코스를 달려야 하는 이유. 풀코스를 완주해야하는 이유. 사실 환불이 아까워서 도전하게 된 것도 이유가 있지만 큰 이유는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은 포기보다는 해냄을 하고 싶어서 였다. 나는 살면서 수많은 포기를 해왔었는데 그때의 포기들은 몇 년이 지나서도 몇 십년이 지나서도 내가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참 씁쓸한 맛이다. 그런데 올해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얻은 것은 포기와 싸우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1km를 뛰어내고 5km를 뛰어내고 10km와 그 이상의 거리를 뛰어낼 때 항상 나는 포기와 싸우면서 뛰었다. 그리고 그 거리가 길면 길수록 나의 육신과 정신에 있는 포기와 싸우는 근육은더 크고 탄력있어짐을 느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삶을 포기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삶을 포기할 생각을 갖고 있었던 내가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것이 아닌 그럴 생각을 가질 정도로 고난스럽고 비참했다는 생각을 하며 앞으로는 포기보다는 해냄으로 내 삶을 채워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포기는 포기를 부르고 해냄은 또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다. 풀코스를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기로 한 건 단순히 포기보다는 해냄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 못할 것도 없지.’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나름에 풀코스 마라톤 준비. 허약한 몸뚱이와 저질 체력. 달리기를 시작한 지 반년도 안된 런린이에게 있어서 매우 무리스러운 목표였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떨어져 있던 체력과 자존감을 올리기도 했고 11월 6일을 기다리며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큰 목표에 도전하려면 여러 리스크들과도 싸워야 했고 나는 여러 리스크들 중 하나였던 무릎부상에 직면하고 말았다. 당연히 며칠간은 달리기를 안하며 쉬어줄테지만 ‘쉬었음에도 무릎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단순 피로통증이 아니라 근육손상이라면?’ 같은 걱정들이 심난하게 스쳐갔다. 욕심이 과하여 내 몸에게 함부로 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어찌됐건 이미 일은 벌어졌고 어제의 연습은 꼭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할만한 가치가 있는 연습이었다. 꽤나 유용하게 얻어간 경험도 있었고. 이제는 무릎을 빠르게 잘 회복시켜서 대회 전까지 무리없는 컨디션을 만들어 내야한다. 정말 오래간만에 파스도 사다가 무릎에 붙이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걸어본다. 그렇지. 멀리 뛰려면 일단은 걸어야지. 욕심이 과하여 내 몸에게 함부로 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장거리의 성과를 내준 내 몸에게 감사했다. 내 몸에게 앞으로 더 감사하려면 내 몸을 좀 더 보살필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