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 힘이 생기거든.’
‘달리면 힘이 빠지는 거 아니야?’
자신 때문에 달리지 못하는 것 같이 보이는 불나방이를 보며, 달리는 달리지 않을 핑계거리를 찾듯이 반문했다.
‘아니야. 달리기 시작하면 더 멀리, 더 높이 달릴 수 있게 된단다.’
‘얼마나 멀리?’
‘지구 끝까지?’
‘얼마나 높이?’
‘저 달 너머까지?’
‘거짓말.’
‘언젠간 너도 내 말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너는 달리니까.’
긍정으로 확신에 찬 불나방이의 말이 지치고 지친 달리에게 별로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불나방이가 이토록 확신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왠지 그 이유는 지치고 무너져 가는 쇠덩이인 자신에 비해 불나방이가 작은 몸집에도 당당히 앞을 향해 나가는 이유와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스쳐갔다. 달리는 그 이유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자신이 계속 불나방이에게 의심투로 묻는 것 같았기에 좀 더 완곡한 질문을 준비해야 했다. 불나방이가 자신에게 기분이 상해 달려 가버리면 혼자 남을 자신이 두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달리가 다음 질문을 고르고 고르는 동안 불나방이는 점점 멀어졌다. 달리는 불나방이와 멀어지지 않기 위해 땅 바닥에 발걸음을 더 많이 주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았던 달리였지만 어쩐지 달리는 괴로움 보다는 불나방이에게 무슨 말을 건낼지를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너도 지쳐서 쓰러졌을 때가 있었겠지?’
‘그랬겠지?’
‘그건 언제였어?’
‘몰라 기억안나. 달리다가 다 써버렸거든.’
‘뭐라구?’
‘달리기에 주 연료는 마음에 근심이야. 나는 틈날 때마다 달려와서 근심이 사라져 버렸어.’
‘그럼 지금은 뭘로 뛰는 거야?’
‘지금도 근심으로 뛰는 거지.’
‘너같이 씩씩한 애도 근심이 있구나.’
‘누구나 근심이 있지. 먹을 근심, 지낼 근심, 편안할 근심, 해가 너무 빨리 져도 근심이 생기고 달이 너무 늦게 떠도 근심이 생기지.’
‘그럼 앞으로 더 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근심이 필요하겠구나.’
‘딱히 그러진 않을 거 같아.’
‘힘들었을 때를 잊었을 만큼 근심을 달리기로 다 써버린 거 아니였어?’
‘그랬지. 그래도 세상은 근심 투성이잖아. 아무리 비워내도 근심은 계속 생겨날 거야.’
‘너가 근심이 사라져서 달리는 걸 멈출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까?’
‘왜?’
‘달리지 못하면 달리지 못해서 근심이 생길 거거든.’
‘이해는 안되지만 너가 달리는게 행복하다는 건 알겠어.’
‘넌 어때?’
‘뭐가?’
‘지금 달리고 있잖아.’
달리는 어느새 천천히 달리고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불나방이의 말대로 자신이 행복해졌는지 아닌지 자문했다.
‘근심을 조금 쓴 거 같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