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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유 Nov 22. 2022

달리면서 울어 _ 오래

20221021 D-17 _ 오래

다큐멘터리 영화 <시인들의 창>에 한 장면. 이 영화의 작가님들은 예술인이면서 도인의 모습들을 보인다.

 이날은 합천 수려한 영화제로 향한 날이었다. 무릎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지방까지 이동하는데 무리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늦잠을 자버렸고 기차시간과 영화제 셔틀버스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추는 쫄깃한 일정을 경험했었다. 30분만 일찍 일어났으면 순조롭고 편안한 일정이었을텐데 왜 잠이라는 녀석은 오랄 때는 오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미련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결국 다행스런 타이밍으로 영화제가 운영되는 합천 영상테마파크에 도착했다. 세트장은 시내와 꽤 긴거리로 떨어져 있었고 불행히도 그나마있다는 식당은 문을 닫은 상태. 나는 이날 도착시간상 마지막 타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휑한 주변환경과 배고픔은 나를 숙소로 유혹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동수단이 없다는 것. 셔틀버스는 마지막 타임 영화가 끝나야 운행하고 주변 버스정류장은 다음 버스가 언제 올지 내가 가야할 곳으로 데려다줄 지 미스테리였다. 3시간여의 공백. 택시라도 부르면 올까?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아까운데.. 이런 생각을 할 즈음에 택시 한대가 눈에 보였다. 누군가를 내려주고 떠나는 택시라고 생각해서 ‘사장님!’을 외쳤다. 기사님이 듣지 못한 듯 차를 세우지 않고 테마파크 입구를 지나자 나는 사장님을 몇 번 더 외쳤다. 다행히 택시가 입구 앞에 섰다. 나는 택시를 놓칠세라 후다닥 택시로 달려갔다. 그런데 뒷좌석의 유리창이 내려왔다. 밀려드는 민망함. 테마파크를 떠나는 승객들이 차에 타고 있던 것이다.      


‘타세요.’      


 삼촌벌 되는 형님들이 쿨하게 합석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민망함과 미안함에 기사님과 승객분들게 죄송하다, 괜찮다를 연신 외치며 민망한 걸음을 돌렸다. 택시가 떠났다. 시간은 남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점점 유혹이 생겼다.      


‘조금.. 달려볼까?’      


 부상이 완전히 다 낫지는 않은 것 같지만 살짝살짝 뛰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일단 뛸만한 코스를 찾아 설렁히 걸어보기로 했다. 입구 밖을 다시 나서서 길 건너에 있는 산책로를 걸었다. 와. 영화제 이름답게 수려하고 멋진 산책길이 옆에 황강을 두르며 이어져 있었다. 바닥은 나무데크로 되어있었지만 뛰는데 무리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산책로는 그다지 길지 않아서 1km가 채 되지 않아보였다. 왕복으로 뛰어도 되긴 했겠지만 뒤에 일정과 땀에 젖을 옷과 부담위험을 감내할 정도로 엄청 뛰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며 다시 테마파크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테마파크 구경을 하며 시간을 떼우기로 했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우리나라의 근현대기 시절의 세트가 있어서 영화촬영도 자주 하고 사람들도 많이 들러서 사진도 찍으며 놀다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영화 상영시간이 되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장르는 다큐멘터리. 제목은 ‘시인들의 창’이었다. 왠지 제목을 읽으니 지루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평소에 종종 시를 쓰기도 하고 시인이라는 직업에 관심도 많았기에, 그리고 러닝타임도 장편영화치고는 부담없는 1시간이었기에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시인들의 창에서 나는 어떤 현장들을 볼 수 있게 될까. 오프닝 시퀀스가 펼쳐지고 나는 조금에 불안감을 느꼈다. 긴 호흡에 원테이크 형식이었던 것이다. 원테이크 형식은 사실 나도 많이 애용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내가 주로 하는 형식은 무빙을 많이 주는 핸드헬드 형식인 반면 영화의 원테이크 형식은 픽스 원테이크 형식이었다. 말그대로 카메라는 멈춰있고 카메라가 담아내는 현장이 오래도록 보여지는 것. 다소 정적인 현상들이 보여지기 시작했고, 아.. 이 영화 쉽지 않겠구나 하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영화의 중반에 와닿고 있었다. 처음 걱정과 다르게 영화게 홀려 빠져들며 영화를 따라갔던 것이다. 이유는 연출자의 과감함과 영화의 시선에서 담아내는 현실 드라마였다. 다양한 작가들이 머무르며 글을 쓰러 찾아오는 집. 그 안에서 각자의 글을 쓰는 작가들. 나레이션도 없고 자막도 없고 인터뷰도 없다. 오로지 시점은 관찰한다. 그러나 관찰하는 작가들의 모습에는 언제나 다양한 생각이 보인다. 그리고 글과 마주하는 도인과도 같은 작가들의 마음까지도. 며칠동안 때로는 밤을 새며 써나갔던 글들을 주욱 지워나가는 한 작가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과 부끄러움도 느낄 수 있었다. 글은 쉽게도 어렵게도 쓸 수 있다. 재밌게도 절실히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기란 얼마나 고된 일일까? 나는 긴 호흡에 픽스 원샷에서 보여지는 여러 작가들의 창작모습을 보며 역시 글쓰기는 달리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짧을 때도 있지만 꽤나 길 때도 있고 결국엔 자신을 다독이고 설득해야 하는 자신과의 일이라는 것. 그리고 마음을 정돈하고 펼쳐나간다는 것. 이것들은 달리기와 글 쓰는 것의 공통점이었다. 올해 본 영화 중 1위는 ‘헤어질 결심’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날 본 ‘시인들의 창’도 ‘헤어질 결심’못지 않는 내 마음에 1위로 두기로 하며 감성충만해진 상태로 숙소에 도착했다. 여정첫날이니 왠지 그냥 자기에는 아까워 한적한 동네를 걷다가 작은 횟집하나를 발견했다. 세꼬시나 사갈까. 횟집으로 들어서서 사장님께 횟감을 물어보는데 누가 옆에서 ‘또 만났네?’ 라며 말을 건다. 이런 우연이. 일전에 인연이 있었던 승객분들이셨다. 반가운 마음에 합석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과 배우님이셨다. 전날부터 만났었다는 다른 감독님도 소개를 받았다. 이날 밤은 전과 찌개를 얻어먹으며 우리가 하는 일들에 대한 여러 생각과 추억을 나눴다. 예술가와 전문가의 구분이 뭘까. 작가와 도인이 뭘까. 도 생각해본다. 느낌상 차이는 나지만 둘 다 나쁘진 않다. 같은 점은 생각을 많이 해야한다는 점. 오래해야 한다는 점. 솔직해야 한다는 점인거 같다. 이것들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꽤나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나 달리기나 오래하는 재미가 있는 일인것 같다. 나는 이 재미있는 일들을 오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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