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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Aug 10. 2022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한겨레교육센터에서 처음 글쓰기를 배우게 되었을 때, 낯을 가리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B 언니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B 언니는 합평 수업 때마다 훌륭한 작가와 작품들을 줄줄이 말할 수 있었고 문학에 대해, 특히 소설에 대해서는 나름의 가치관을 지닌 사람으로 느껴졌기에 나는 대답이 망설여졌다.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가들을 말하면 언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신이 없었다. 내 취향에 실망하는 건 아닐까. 

   

   고민 끝에 나는 당시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던 작가, K를 겨우 떠올려냈다. 하지만 사실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소설집 두 권을 연달아 재미있게 읽은 건 사실이지만 좋아하는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B 언니와 자연스레 소설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기뻤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나는 전에 비하면 월등하게 많은 양의 독서를 했고 다양한 작가들을 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좋아하는 작가들이 새로이 생겼다. 지금은 B 언니를 비롯한 같이 소설 공부를 했던 동료들이 다 알 정도로 애정하는 작가도 생겼다. 그녀 작품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찾아 읽을 정도로 팬이 되었다. 심지어 그녀가 번역한 작품까지도 찾아 읽을 정도다. 또한 그녀 외에도 국내외에 훌륭한 작가가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방 책장에는 대학생 시절부터 흠모한 두 작가의 책이 한 권도 빠짐없이 빼곡히 꽂혀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두 사람의 작품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는 에쿠니 가오리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두 분 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팬층도 두꺼워서 좋아하는 일이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하루키는 작가 이름과 글을 딴 여러 책이 존재할 정도니까. 나의 이십 대는 두 작가의 소설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나는 에쿠니 가오리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반 시절 유독 책을 읽을 때마다 울던 날들이 있었다. 아마 그때 흘렸던 눈물은 책 내용과 전혀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오래 꿈꿔왔던 디자이너의 꿈을, 그림을 그리는 삶을 놓아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이 밥을 먹다 남겨도 잠이 오지 않아 창밖만 바라봐도 눈물이 났다. 

   나는 매일 곳곳의 카페를 쏘다니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 손에는 언제나 그들의 소설이 들려있었다. 

   만약에 그때 내가 다른 글을 읽었더라도 이런 사랑에 빠졌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먼 일본 땅에 사는 마리와 리카의 삶을 눈으로 좇던 어린 내가 존재했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녀 소설을 로맨스 소설이라고 여겼다. 소설 속 정형화되지 않은 사랑 이야기에 반했고 그런 글을 쓰는 나를 꿈꿨다.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니다. 하지만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아름다운 장면 너머 인물이 전하지 못한 말과 행동이 눈에 밟힌다. 그들의 녹록지 않은 하루와 첨예한 갈등 없이 흐르는 이야기를 동경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그들이 쓴 날 것 같은 에세이도 인터뷰도 하나같이 전부 근사하다. 그래서 너무 좋고 또 부럽다.     


   좋아하는 것과 꿈꾸는 미래가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나’중 어떤 나는 쑥스럽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책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를 두 작가에게 오롯이 내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B 언니 이후에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무도 묻지 않아도 이제는 당당해지고 싶다. 


   자꾸만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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