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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Sep 27. 2022

걷는 사람

묵묵히 걷기를 바라는 마음





    걷기의 가장 큰 동기는 다이어트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올곧게 통통과 뚱뚱을 오가는 체형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언제나 다이어트라는 숙제를 안고 살아왔다. 정확히 스무 살 때까지는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고 그 직후, 그러니까 성인으로서 첫 연애를 최종에 최종 실패를 거듭할 무렵 아, 이건 문제가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살을 빼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어도 딱히 생각나는 운동이 없었다. 그러니 그저 걸을 수밖에. 

    처음에는 학교 가는 버스를 몇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걷는 식이었다. 친구를 만나서 떠들며 산책하듯 걷기도 했다. 걷기가 익숙해지자 조금 더 오래 걸어보고 싶어졌다. 

    어느 날 나는 자주 가던 혜화역 로터리까지 걸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 우리 집은 노원구 중계동에 있었다. 중계에서 혜화까지는 무려 11km에 달았다. 그때도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세밀한 길 안내나 시간이 나왔던 것 같지는 않다. 기억이 불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긴 거리를 알면서도 걷겠다고 나섰던 건지 모를 일이다. 

    혜화역 부근에 다다랐을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물들도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왜 남의 집 담벼락은 왜 이렇게 길어 보이는지 괜히 화가 났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세 시간을 훌쩍 넘겨 목적지였던 혜화동 로터리 스타벅스에 들어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던 순간은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물론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 나처럼 이렇게 많이 걷는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자랑했다.

    “엄마, 나 오늘 이만큼 걸었다?”

    “세상 동네 먼지란 먼지는 다 뒤집어쓰고 왔구나.”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 대꾸했다. 어려서부터 아토피를 앓고 있던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으리라. 알면서도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자 속이 쓰렸다. 

    이후에도 나는 꾸준히 걸었다. 하루는 집에서 언니 직장이 있었던 쌍문동까지 걸어간 적도 있다. 은행원인 언니는 손님을 응대하다가 고객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 사색이 되었다. 언니는 내 손에 비타500 하나를 쥐여주고는 뭐하러 왔냐며 얼른 가라고 황급히 등을 떠밀었다. 뿌듯함과 반가움은 내 몫뿐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왔어. 힘들지는 않았고?’ 그런 말이 듣고 싶었다. 

    아직 농익지 않은 사회초년생 사람에게서. 내가 아플 때마다 기도하는 유일한 사람에게서.     


    너무 가까운 관계라서 함부로 넘게 되는 선이 있다. 일방적일 수 없다. 나 또한 무수히 많은 날 동안 그녀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가 상처를 줬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셋이라서 유지할 수 있는 줄의 느슨함이 있다. 둘 중 누군가에게 서운한 일이 생기면 다른 한 명에게 위로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몰랐던 상대방의 마음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도, 그 사이를 오가며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도 전부 걸으며 깨달았다.

    무뚝뚝한 말 사이에 걱정과 염려가 숨어있음을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도, 언니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무용한 걷기를 즐긴다. 가능한 한 어디든 걸어 다니고 싶다. 우리 구 안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 걸어가 보고 싶다. 힘들지 않을 만큼 걷다가 앉아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다가 돌아오는 일이 나에겐 가장 작은 여행이다.

    요즘 내 소소한 행복은 매주 일요일 저녁 식사 후, 홀로 걷는 것이다. 남편과 아이는 나의 짧은 외출을 아무 말 없이 수긍한다. 어디를 얼마만큼 걸었느냐고도 캐묻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강아지처럼 방방 뛰며 반겨줄 뿐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왔는지 손을 살펴보기도 하지만.

    짧으면 삼십 분, 길면 한 시간. 음악이나 오디오북, 혹은 다시 보기를 들으며 느슨하게 걷는다. 걷다 보면 가끔 스물두 살, 혜화역에 거의 다다랐을 때 턱 끝까지 차올랐던 가쁜 숨이 떠오른다. 지금보다 더 엉뚱하고 멋대로였던 내가 그립다.


    이렇게 오랫동안 걷기를 좋아할 줄 그때의 나는 몰랐겠지. 마찬가지로 십 년 후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영영 걷는 사람이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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