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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Oct 17. 2022

게으른 필라테스

가늘고 길게 가져가는 신체활동에 대하여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한 가지 운동을 지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래라고 해봤자 이제 1년 반 정도. 누군가에게는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겐 어마어마한 세월이다. 

    처음 내가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나에게 무섭지 않겠냐고 물었다. 워낙 겁도 많고 운동신경이 전혀 없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필라테스에 대해 잘 몰랐다. 어쩌면 잘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기구에 잘 매달리거나 앉아 있으면 될 일일 텐데. 나는 텔레비전이나 광고 전단에서 봤던 아름다운 동작들을 떠올렸다. 동작이 되고 안 되고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재작년 겨울, 코로나 시대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경제 활성화 정책들을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민간 실내체육시설 환급지원이었다. 줄넘기나 달리기와 달리 필라테스는 비용이 제법 들기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환급을 받는다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인들을 따라 덜컥 등록하고 처음 수업을 들은 후 몇 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 나는 생각보다 더욱 뻣뻣하다는 것. 그리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동작을 따라 하면 무서울 게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뚜렷한 몸무게나 체형 변화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가 내 몸을 제어할 수 있게 되길 바랐다. 특히 코어라고 불리는 몸의 중심부, 배와 허리, 등 부분에 힘이 생기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올바른 자세와 어깨선까지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여겼다. 


    어쩌면 목표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일주일에 두세 번 가던 수업은 그다음 재등록을 할 때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그다음 재재등록을 하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수업 일수를 줄였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일 년 반 동안 내가 이 운동을 하고 있다고 어디 가서 말은 할 수 있지만, 열심히 하고 있냐면 그건 아니다. 허리 중립을 맞추고 척추를 하나하나 뽑아내듯이 일어나라는 말들을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히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선생님으로부터 긴장 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누워서 다리를 하늘로 올리면 사시나무처럼 후들후들 떨린다. 예전에는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하던 동작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리가 덜덜 떨려도 끝까지 동작을 해보려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우는 아이에게 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오늘 잘 안돼도 내일은 또 다를 거야. 그런 믿음으로. 이렇게 게으르게 성장한다면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번 달이면 수강권 기간이 끝나고 재재재등록을 해야 한다. 잠깐 쉴까 여러 번 고민했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그만두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 텐데, 라고 말한다. 나도 안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했을 뿐이다. 아마도 나는 못 이기는 척 최대한 긴 기간 동안 가장 적게 가는 방법으로 다시 등록할 테다. 

    어느새 말랑해진 몸과 마음으로 가기 싫어, 가기 싫은데, 오늘은 쉴까를 반복하다가 다녀와서는 그래도 다녀오니 너무 좋아라고 말할 테다. 운동을 다녀온 후 며칠간은 배에 들어간 단단한 힘과 몸 구석구석 놀란 근육들을 선명하게 느끼며 살 테다. 

    필라테스는 지금까지 내가 해본 운동 중에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게으른 채로 오래오래 하고 싶다. 삶에 잔잔하게 스며들어서 어느새 내 것이 됐는지도 모르게 살게 될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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