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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Nov 07. 2022

팔리지 않는 이모티콘

꼭꼭 숨어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위하여





    나는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될 줄 알았다. 거창한 그림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를 그리는 직업을 갖게 될 줄 알았고 그렇게 사는 모습이 당연한 ‘나’처럼 여겨졌다.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디자인과를 졸업했으며 자연스럽게 관련 일을 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그 후 결혼과 출산이라는 큰 변화가 있었지만 이 두 가지 때문에 내가 디자인을 포기했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단지 그만두고 싶었을 뿐이다.

직업으로써 그림을 그리는 나는 이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삶을 사는 건 아닌 듯하다. 아이가 태어나자 자연스럽게 뭔가를 그려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단순한 선 몇 개로 그려낸 그림은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어린 아기와의 소중한 소통의 매개체였다.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그려주면 주변 사람들은 ‘그림 잘 그리는 엄마를 둬서 좋겠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가슴에 무언가 묵직한 게 얹힌 듯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겨울, 코로나 확진이 되어 집 안에 갇혀 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가족 셋 중 남편과 나, 두 사람만 확진이었으므로 우리는 집에서 격리하고 아이는 근처에 사시는 친정 부모님 집에서 열흘 동안 머물렀다. 하루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서로 당혹감과 서러움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화와 메시지뿐이었다. 서로 ‘뭐해?’라는 질문만 수시로 반복하다 보니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늘 놀고 있다고 했고 나는 대체로 그냥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적당한 대화 주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렸다. 태블릿 패드에 아이 얼굴을 그려서 보여줬다. 아이가 반응을 보이자 이번에는 여러 과일에 눈코입을 그려서 보냈다. 아이는 대화창에 엄마 정말 잘 그렸다, 집에 가면 꼭 보여달라며 즐거워했다. 말끝마다 다양한 이모티콘과 하트가 아낌없이 날아왔다.

오랜만에 그림을 끼적였더니 재미있었다. 아이에게 받는 칭찬도 기뻤다. 그러다 점차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더 좋겠다는 마음에까지 이르렀다.      


    격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쉬운 듯 어려웠다. 그저 전과 똑같이 살면 될 뿐인데 체력은 뚝뚝 떨어졌고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의욕이 없었다. 고민 끝에 이모티콘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온라인 강의를 결제했다. 실제 캐릭터 설정부터 판매까지 작가의 노하우가 가득 담긴 강의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 설명대로라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나는 남들보다 덜 힘들게 해낼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도, 캐릭터를 만들고 색감을 고르는 일도 버겁지 않았다. 수업 내용도 곧잘 따라갈 수 있는 정도였고 수강생들이 올린 이모티콘들을 보며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장 자신 있는 동물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동물은 너무 단순할 것 같아서 곰과 토끼 사이에서 태어난 ‘곰끼’라는 상상 속 동물을 만들었다. 곰을 닮아 갈색빛이 돌고 통통하고 긴 귀가 토끼다웠다. 곰끼에게 나처럼 거절을 잘하지 못하고 매사에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는 성격을 부여했다. 자극적인 단어들을 배제하다 보니 마냥 유순해 보였지만 그 점이 곰끼의 매력이라고 적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움직이지 않는 이모티콘 한 세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판매처에 제출했다. 심사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한 번에 승인받는 일은 드물다는 강사의 조언과 비슷한 내용의 수강생 후기를 많이 읽었음에도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확히 2주가 흘렀을 때, 미승인이라는 빨간 글자를 보고 느꼈던 허탈감은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분명히 강사가 그러지 말라고 했건만, 미승인을 받고 나니 이모티콘이 거들떠보기도 싫어졌다. 뭘 수정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얼마만큼 손봐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이제 와 보니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캐릭터라 고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무기력한 시간을 한 달 가까이 보낸 뒤에야 가까스로 다른 플랫폼에 제출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 제출했던 플랫폼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심사과정이 까다롭지 않아 규격이 맞고 이모티콘 구성이 단조롭지 않으면 대개 승인을 받는다는 곳이었다. 이곳 역시 심사 기간은 2주였다. 나는 거의 매일 플랫폼에 로그인해서 결과가 일찍 나오진 않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리고 정확히 2주가 지나자 심사 중은 판매 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가 만든 창조물이 세상에 공개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면, 내 그림을 본다면,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모티콘을 쓰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상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상상은 늘 안갯속처럼 흐릿했다. 와닿지 않았고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승인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었다. 내 이모티콘이 판매 중으로 바뀌던 날, 다른 수많은 신규 이모티콘이 함께 출시되었다. 다음 날도, 다음다음 날도 신규 코너에는 여러 이모티콘이 업데이트되었다. 내 캐릭터는 이제 검색을 해야지만 여러 비슷한 종류의 이모티콘들과 함께 찾을 수 있다. 처음 며칠은 내 계정으로 로그인해 수익이 있는지 확인해보곤 했지만 이제 더는 그런 수고조차 들이지 않는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니 찾기 어려운 이모티콘을 만들었다. 내가 과연 무언가를 세상에 내놨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고, 파일을 올리고, 기다려서 받은 결과가 나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이게 좋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심사 반려를 받았을 때는 내가 뭔가 부족했나 보다 성찰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슬픈 건 아니다. 더디게 회복하는 과정에서 다시 실패하는 나를 상상하는 일은 쉽다. 오히려 성공하는 나보다 훨씬 잘 그려진다. 이미 여러 번 겪어봤으므로.     


    어느 날, 다시 뭔가가 그리고 싶어지면 또 아무렇지 않게 그릴 것이고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리라는 것을 안다. 종종거리며 애쓰던 마음들을 모아 성을 쌓았다가 한순간 바싹 말라버린 모래알처럼 다시 흐트러지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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