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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oho Nov 28. 2022

아기는 오직 너만

이상하고 아름다운 마음





    나는 아기를 좋아한다. 특히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친구들의 출산 소식을 접하면 어떻게 이토록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내 친구가 낳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기를 만나면 잠깐 스쳐 가는 것뿐인데도 몹시 반갑다. 어쩔 줄 모른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아기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어서 그나마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발바닥을 살짝 만져본다. 뭔가 말을 걸고 싶고 웃게 해주고 싶고 눈을 맞추고 싶다. 적극적인 내 표현을 불편해하는 아기나 부모도 있을 수 있으므로 적당히 상황을 봐가면서 행동해야 한다. 아기를 만나면 오직 그 아기만 보인다. 주변 지인들은 전부 뒷전이다. 어쩔 수 없다. 너무 좋은걸.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면 사람들은 늘 같은 말을 한다.


    “둘째 낳아야겠네.”

  

    왜 이야기가 그렇게 전개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아기가 좋고, 어려서부터 좋아했고 그래서 결혼 후 임신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과 두 번째 임신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는 낳을 마음이 없다.

    그런 식의 질문 아닌 질문을 들으면 마땅한 답이 궁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남편 탓으로 돌렸다. 그와 나는 나이 차이가 큰 편이라서 둘째를 낳으면 서로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데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그러면 아무도 더는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설명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에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생에서 내가 낳은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 은유만 사랑하고자 한다.

     내 글을 읽고 많은 부모가 모르는 소리 한다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둘, 셋 낳은 분들은 사랑은 나뉘는 게 아니라 더 커지는 거라고 말한다. 물론 나도 그 말을 믿는다. 우리 부모님이 언니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는, 특히 아이를 여럿 둔 부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큰 사랑을 가졌다고, 그래서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아서 일찍 단념한 것일지도 모른다.    

  

    은유는 벌써 아홉 살 생일이 지나 아기가 아닌 어린이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여전히 아기처럼 보인다. 토실한 젖살과 말랑한 발바닥도, 목덜미를 끌어안을 때 나는 살 냄새도 전부 아기 같다. 이마와 머리카락 경계에 오소소 자라고 있는 잔머리도, 도톰한 손바닥에서 나는 땀 냄새도 전부 그렇다. 얇은 살갗에 비치는 핏줄도, 아직 억세지 않은 눈썹과 머리카락도. 내가 억만금을 가진 부자라고 해도 살 수 없는 귀한 것들을 은유는 모두 지니고 있다. 어떻게 나와 남편 사이에서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는지, 매일 보면서도 계속 신기하다. 이제는 가끔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구석이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아가, 온종일 품에 안고 쓰다듬을 수 있는 내 아가다.

    어쩌면 나는 은유와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은유를 닳도록 안아주기 위해, 은유에게 엄마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은유가 자라면서 내가 생각하는 아기의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예전에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들이 눈에 띄었다면, 지금은 은유 또래 어린이까지도 전부 아기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아기를 좋아하게 된 셈이다. 

    나는 종종 은유 친구들에게도 ‘아가’라고 부르는데 그러면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느 날은 가늘게 흘겨 뜨면서) 대답한다.

    “저 아가 아닌데요.”

    그렇지. 맞다. 아기가 아닌데 자꾸 잊는다. 그런 어린 친구들 대답조차 귀여워서 사과하면서도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상한 일이다. 귀여운 아기들을 만나면 웃음이 나는데 은유를 가만히 계속 들여다보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왜 그럴까.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서일 거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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