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이들. 그리움을 말합니다
스승의 날에 앞서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것.
아이가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웃 어른들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애정을 여러 명에게 주는 '선생님'이라는 이를 만나는 것은 늘 특별합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보살핌을 건네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시선이 주어지던 많은 시간을 건너뛰는 느낌일 겁니다.
제가 지나쳐 온 수많은 선생님 중에서 누가 떠오르는지, 이맘때가 되면 늘 생각해보곤 합니다.
유치원 때 원장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첫 번째 선생님이고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모두 지나오고 대학교 4년까지 지나오고도 특별히 떠올리게 되는 선생님이나 '은사'라고 부를 수 있는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 매해 저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도 떠오르는 선생님은 역시 유치원 때 푸근한 모습으로 저를 꽤나 많이 예뻐해 주셨던 유치원 원장 선생님이시죠. 유치원과 동시에 미술과 피아노를 함께 가르쳐주는 학원으로도 운영 중이어서 물감 냄새와 언니가 그림 그리는 걸 부러워하며 옆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던 순간의 조각난 기억, 매번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들이 마치 합주를 하듯이 기억과 함께 떠오릅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첫 담임선생님. 키가 작아서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기억에도 가장 오래 남아있는 선생님일 정도로 스승의 날엔 늘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2학년 때인가, 언제였는지 모르는 소풍 날 (부산은 산이 많아서 소풍도 뒷산으로 다녀오곤 했죠) 소풍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나뭇가지에 점퍼가 걸리고 말았죠.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내려왔는데 그 점퍼를 저에게 찾아주시기도 하셔서 저의 덜렁거림과 함께 우리 가족 모두에게 늘 떠오르는 선생님이 되셨답니다. 지금은 어디에 계실지, 사실 너무 궁금하고 그립고요.
그리고 조금 특별한 선생님은, 제가 2학년 때 서예 학원을 다닐 때의 원장 선생님이세요.
왼손을 많이 쓰던 게 걱정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영문도 모른 채 집 근처 상가의 지하로 처음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먹물 냄새가 가득했고 너무나 조용하지만 동시에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의 첫인상이 떠오릅니다. 한자로 이름을 써 보라고 하셨는데 그때 썼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 서예학원에 놀러 다니듯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엄할 때는 아주 엄하고 단호하지만 제가 혼난 기억은 없어서 지금도 이상하기만 합니다. 선생님은 장애를 지니고 계셔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셨죠. 그래서 타학원과는 다르게 원장 선생님은 높다란 공간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의 숙제를 검사하거나, 화선지에 적은 아이들의 글을 보고 하나 둘 세심하게 가르침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원장 선생님의 공간에 올라가는 이는 거의 없는데 저는 여러 번 올라가 앉아서 선생님과 간식을 먹기도 하였던 기억이 나고요. 원장 선생님이 움직이지 못하셔서 늘 부원장 선생님이 계셨고 돌아다니며 우리의 자세를 일일이 체크하셨죠.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면서 말입니다. 그 덕분에 저는 처음으로 서예대회에 나가서 입선을 하기도 해서, 큰 액자로 화선지에 그 당시에 썼던 작품이 빛을 발하게 되었죠. 단호한 호랑이 선생님 같은 이미지인데, 부산을 떠나오고도 친정집에 갈 때마다 그곳을 여러 번 내려가보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서울에서 지낸다며 인사하고 웃으면서 안부를 여쭈었는데 그 이후에 한 번 더 갔을 때 이미 선생님이 바뀌어 계셨죠. 아마, 이 지상에 계시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고 씁쓸하고 슬픈 기억이 함께 떠오르곤 합니다.
제가 예전에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싶다며, 화선지에 붓으로 배우는 전통 캘리그래피를 잠시 배울 때도 선생님 생각이 참 많이 났었고 함께 곁에 계신 것 같은 느낌도 들곤 했지요.
그래서, 지금도 서예나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선생님에 대한 저만의 기억법, 그리워하는 방법이라 지금 멈추었지만 또다시 배우러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선생님, 스승님, 은사에 대한 의미가 많이 흐려져만 가는 날들이라 사실 많이 속상하지만, 단 한 명의 진심이 닿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긴 시간을 지낼 수 있는 힘을 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겐 그런 선생님이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