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힙합을 즐긴다는 사람이라면 연령을 타지 않고 이센스(e-sens)란 뮤지션은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구분이 모호해진 요즘이지만 마니아와 상업 영역을 오가며 활동한 뮤지션이라 요샌 활동이 뜸하다 하더라도 최근 10년 간 가장 임팩트가 큰 국내 힙합 뮤지션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론 이센스다.
이센스가 내게 특별한 아티스트인 이유는 힙합에서 삶, 직업윤리에 대한 이야길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제 힙합이란 장르가 사실을 넘어 상상과 거짓에 가까운 기믹을 담아야 더 박수 받는 시대에 이센스만큼은 그런 재미, 기교보다는 고전적 자세를 취한다.
고전적 자세란 사실을 이야기하는 건데 태생적으로 힙합이란 문화가 우리것이 아니기에 그 사실의 형태는 (욕설, 비프, 디스 같은) 터프함보단 실로 자전적이다.
<The Anecdote>(에넥도트, 2014) 는 그 부분을 인정 받은 명반 - 공식적으로 국내 100대 명반에 기록 - 으로 힙합음악을 향유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의 스마트한 작사, 랩핑에 대한 실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이센스 음악을 듣다 보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와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뛸 때 들을 만큼 신나는 노래는 아니지만 가사를 곱씹다 보면 가사 속 의미가 가진 깊이감이 마치 뛰다가 나는 입에서의 단내와 어울린단 생각에 뜀박질에 힘들 때 틀어놓고 꾸준히 들은 지는 꽤 오래됐다.
에넥도트보단 덜 알려졌지만 그 후속작인 <이방인>(2019) 은 본인이 실수를 저지른 뒤 세상에 다시 나오며 던진 출사표 같은 작업물이다. 에넥도트만큼의 신선함은 덜하단 주변 평도 있었으나 난 더 좋게 들었다. 사건에 시달리고 고뇌를 겪고 난 뒤라 생각의 깊이는 웬만한 철학자 저리 가라 할 만큼 깊어져 있었고 에넥도트만큼 맘 속의 응어리가 많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가웠다. 이 글을 쓰며 타이틀곡이란 걸 알은 거지만 수록곡인 클락clock 은 내가 사업을 할 때나 직장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꾸준히 들으며 이센스의 맘과 동기화align 했던 곡이다.
가사를 보면 이렇다.
1절
돌아볼 시간이 없어 앞에 보이는 게 많아서
다 걷어내지고 난 뒤의 나를 내가 봤어
좋고 나쁜 것 다 깨끗하게 비워냈을 줄
알았지만 거의 다 그대로였지 인생의 무게와
돈의 맛, 관계의 피곤함, 부담감
서로 먼 데 앉아 쳐다보기만 한 세상과 나
뭐 살만하긴 하지 내 친구와 나의 팀
그들은 내 추락을 바란 사람들이 아니지
담배 한 모금, 뿜어 도망 안 쳐 안 숨어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서 남들이 무모하다
말하는 것들 중에 꼭 보석이 박혀있지
갖다 처박을 깡 없는 애들 눈엔 안 보이지
2절
가난한 시인 보다 졸부의 싸가지가
더 괜찮아 보이네 며칠을 굶은 놈의 식사에서
테이블 매너는 번거로운 일,
고깃덩이나 더 얹어놓길, 큰 거 먼저 먹지
Mind on my money, money on my mind
누가 이 게임을 아름답지 못하다 말하나
난 기도 같은 거 안 하고 하늘 대신에 꼭대기를
올려보고 나서 내가 해야 될 일을 정했지
난 내 가족의 편한 삶을 원해
그리곤 다 내려놓고 먼 곳의 어느 도시에
서울과는 다른 밤과 다른 표정에
섞여 살고 싶어 내가 살기에 여긴 불편해
허나 도피의 끝에 새 땅은 없지 늪이야
난 깊숙히 내 기둥을 꽂을 준비하지
그 수표에 적힌 평온의 값
그게 얼마든 줄테니까 내게 삶을 내놔
클락은 선비처럼 고고하게 살아서는. 하고픈 것만 현실감각 없이 해대서는 원하는 걸 절대 얻을 수 없단 걸 말한다. 2절에서 그토록 싫어하는 싸가지 없는 졸부가 배고픈 시인보다 나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말한 것에서. 배고픔에 당면하면 의미보단 양적 크기를 우선시하게 된단 “큰 거 먹지”란 말에 나타나는데 음유시인의 한량적 태도보단 프로다운 직업 윤리를 갖춘 직장인의 힙합을 하고 정해놓은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겠단 강한 의지 또는 생존력마저 느껴진다.
내 직업 및 사업관도 그러해지고 있다. 과정보다 결국 잘 했느냐? 가 중요해지고 있고 어떤 날은 세계적 석학보단 돈을 무자비하게 쓰고 과시하는 그 성장과정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 생각의 중심에 있는 건 정도 차일 뿐이지 목표로 일정수준 이상의 금전을 갈구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공들여 쌓은 철학이더라도 그것을 누군가에 설파할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며 세상과 담 쌓고 자유를 얻었다 할지라도 잠시뿐 이내 곧 현실과 다시 또 얽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목표지향적 태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도에 따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도가 달라지곤 한다. 너무 거세면 비윤리적이고 치사한 인간이 될 수 있지만 배고픔에 처하는 게 싫다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자존감을 무너뜨리게 하는 지 알고 있다면 윤리의식을 넘지 않는 마지노선까지 이 악물고 가야 한다. 그래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다음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