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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Nov 16. 2021

초밥집에서 일하시는 전도사님(2)

[인터뷰] 독일 사는 엄마를 만나다


인터뷰 기회 의도는 독일 거주 엄마들의 고유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줌의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문장을 자주 상기했어요. 설문지 답변과 화상 인터뷰(10월 21일)로 만나 작성한 글입니다. 긍정 에너지 듬뿍 수혈받은 귀한 시간이었답니다. 하이델베르크에 사시는 은정님의 인터뷰는 1, 2부로 나누어 발행 예정입니다. 


[1부] https://brunch.co.kr/@mama2021/125


김유진 : 아이들이 한글학교 다닌 지 벌써 8년이라는 글을 읽었어요. 아이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고 집에서는 무조건 한글을 쓰면서 모국어의 중요성을 가르치신다고요. 저희는 주변에 한글학교가 없어서 아쉽지만 집에서는 당연히 한국어를 쓴답니다. 유치원부터 독일에서 산 아이의 한글 쓰기가 걱정이고요. 한국어와 독일어 두 가지를 균등하게 잘하기 위해 어떤 도움을 주시나요.     


육은정 : 아이들이 책 읽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독일에 살지만 어려서부터 주로 한국어 책을 읽어주었기에 자연스레 가장 먼저 접하는 언어가 한국어였어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동화책을 최대한 실감 나게 읽어주고, 아이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는 늘 흔쾌히 들어주었어요. 한글에 관심 갖게 되었을 때 교재를 한국에서 받아 가르쳐주니 혼자 읽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책에 흥미가 떨어질 때쯤에는 나이에 맞는 책으로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주었더니 꾸준히 흥미를 가졌어요. 아이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장난감 상자 앞, 소파 앞 테이블 위, 침대 옆 협탁 위, 심심할 때 눈이 닿을 곳에 두었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책들을 읽었어요. 한국에서 쓰기 교재를 받아 일주일에 세 번, 저녁 식사 후 한글 공부를 했고요. 시간을 정하니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지금은 독일어보다 한국어를 편하게 생각해서 독일어까지 부족함이 없어야 할 텐데, 그게 고민이랍니다. 딸 말로는 학교에서 독일어를 하니 걱정하지 말라는데 그걸로 충분한지는 모르겠네요. 요즘은 도서관에서 독일어 책 빌려 놓고, 딸에게는 책 내용 요약을, 아들에게는 독일어 책 읽기를 시키는데 한국어만큼 좋아하지 않네요.     


김유진 : 일주일에 한 번 한글학교에 꾸준히 가는 일도 쉽지 않을 텐데 그 열정이 대단하세요.     


육은정 : 8년 동안 다니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제가 가르치기 어려운 역사와 지리 같은 영역까지 한글학교에서 배우고 저도 한국 엄마들과 만날 수 있어서 계속 다녔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좋아해서요.     



한글학교 행사(좌), 한글공부 교재(가운데), 한글학교 문집(우)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시면 독일 전역에 자리 잡은 32개의 한글학교를 만나실 수 있어요.

https://www.keid.or.kr/keid-school-info




김유진 : 독일 살면서 제일 아쉬운 점 하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남매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은 주말에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는데 자신은 가지 못하니 서운하다고 말하는 딸에게 더 잘해줘야 하는데 또 그렇지도 못하고요. 한국은 어느 정도 자주 방문하시나요. 가족들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은 어떻게 해갈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육은정 : 저희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데요. 최근에 다녀온 게 4년 전, 동생 결혼식에 다녀온 거예요. 한국에 정기적으로 다녀오자고 딱히 정해놓은 것은 없지만 부모님께 3년에 한 번씩은 오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있어요. 현재 코로나로 한국 방문이 어렵기도 하고요.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과 화상통화로 아이들이 함께 대화를 나눠요. 제가 처음 독일에 올 때만 해도 스카이프로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통화가 가능하니 좋아요. 직접 만나는 것만 못 하겠지만 아이들과 대화도 하시고 일상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일단 그걸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김유진 : 며칠 전, 5학년인 딸이 학교에서 어떤 남자아이가 ‘중국인처럼 생긴 여자애’라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엄청 나빴다면서 욕해주면서 응징했다고 씩씩거리더라고요. 솔직히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지혜로울까, 고민됩니다. 혹시 대처 방법이 있을까요.     


육은정 : 저도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명확한 방법은 못 찾았어요. 첫째 딸, 같은 반 남자아이가 딸에게 찢어진 눈이다, 가늘다 하면서 눈을 가지고 많이 놀렸는데 한 명이 시작하니까 친한 남자아이들 모두 함께 놀리기 시작했어요. 딸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이런저런 방법을 제시해줬는데 다 통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단호하게 하지 말라고 말해보라고도 했고, 너의 행동이 유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비웃음과 함께 콧방귀를 뀌어주라고도 했고, 화를 내보라고도 했는데 딸아이가 대차게 대처하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나마 선생님께 이른다거나 너네 집에 전화해서 네 엄마한테 말할 거라고 해야 멈췄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어요.     


제가 직접 당하는 게 아니니 대신 싸워줄 수도 없고, 학교를 찾아가 그 상황을 막아줄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답니다. 먼저 아이에게 그 친구가 외모를 지적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행동이고 우리 잘못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줬어요. 미의 기준이 다르고 자기의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는 건 안 되며 그 아이가 아직 어려서 잘 몰라서 그러니 신경 쓰지 말라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모델들 사진을 보여주며 친구들이 놀리는 동양적인 그 눈으로 세계인들에게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요. 아이의 내면이 단단해지도록 얘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는 제 말을 이해하면서도 막상 학교에서 놀림받는 상황은 힘들었을 거예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흥미를 잃었는지 현재는 그런 문제는 없답니다.          


김유진 : 속상하셨을 텐데 굉장히 이성적으로 대처를 잘하셨네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모델을 보여주면서 아이에게 설명해주시는 부분이요.     





김유진 : 독일에서 이방인으로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이고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육은정 : 이방인으로서 힘든 것은 아무래도 이방인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 독일 생활을 할 때는 지금 이 시간만 지나고 독일어도 유창해져서 모든 것이 익숙해지면 다른 독일인들처럼 살 거란 생각도 했었는데 산 지 5년 정도 흐르니 독일에 평생을 살아도 그런 날이 과연 올까, 라는 의문점이 들더라고요. 독일어도 유창해지고 독일 친구들도 사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사회에 스며든다 해도 결국은 이 사회에서 저는 이방인으로 남겼구나, 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되겠다는 의지 또한 없기 때문이죠. 그 뒤로는 무언가 억지로 해보겠다는 마음은 내려놓고 자연스럽고 즐겁게 독일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독일어에 대한 부담감이나 그들과 다른 외모와 문화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방인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거죠. 그저 제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독일 생활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이방인으로서 독일에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김유진 : 코로나로 옴짝달싹 못할 때 온라인으로 독일어 수업을 듣고 B1 시험을 올 초에 합격했어요. 기쁨도 잠시, 취업하려면 B1으로 한참 부족하다는 걸 확인하고 현재는 B2 수업을 듣는 중입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수업은 듣는데 별로 늘고 있다는 자각이 들지 않아서 힘들어요. 은정님에게 독일어란 한마디로 무엇인가요? 또 공부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육은정 : 독일어는 저에게 숙제 같은 존재였어요. 해야 하는데 하기는 싫었다고 할까요? 처음 독일에 오면서 A2.2까지 공부를 했는데 그나마 그만큼 공부한 게 독일 생활하는데 도움은 되었지만 들리지도 않고, 말도 잘 안 나오고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각 과정을 제대로 숙지하면서 레벨이 올라간 게 아니라, 실전에서 사용하기는 꽤 무리가 있었어요. 아이들도 어리고, 경제적 여건도 안 되어서 어학원을 다니지 못했는데 말을 못 한다는 자체가 큰 스트레스니 혼자서라도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자주 했어요. 작심삼일이라고 혼자 집에서 공부한다는 자체가 어렵더라고요. 뭘 해야 할지도 막막했고요. 먼저는 생활 단어를 익히기 위해 아이들에게 독일어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읽기 연습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모르는 단어들을 공부해가며 쉬운 단어부터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생활용품들을 사면 사용법이나 효능에 대한 설명들을 지나치지 않고 사전 찾아가며 읽어보고 길거리의 표지판, 광고판, 안내문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알려고 노력하고요. 기본적이고 쉬운 독일어 단어부터 익혔는데 그러다 보니 궁금한 문법이 생겨서 인터넷으로 검색해가며 내용이 확장되었습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굉장히 열심히 한 것 같지만 그렇지는 못 했고, 독일어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의지가 불타올라서 열심히 하다가 사그라들었다가 불타오르다 사그라들었다를 반복했어요. 무엇보다 독일어가 재미있거나 원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여서 꾸준히 하지 못 했던 것 같아요. 애증의 존재랄까요?     


지난주부터 B1.1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독일 온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다니는 어학원이에요. 다행히 독일에서 산 세월을 무시할 수 없는지 선생님 설명도 잘 알아듣고 공부 내용도 쉽게 따라가고 있답니다. 그동안의 작은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나 봐요. 어학원을 다니고 난 뒤에 제가 얼마나 독일어를 더 잘하게 될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점들이 조금씩 해결되면서 독일어에 대한 재미가 생기고 있어요. 그 자체로 큰 결실이지 싶습니다.     


김유진 : 최인철의 <굿 라이프>에서 이민자들의 삶을 연구해 본 결과 “삶의 질이 좋은 나라로의 이민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라는 문장을 읽고 반가웠답니다. 선진국 독일에 살면서 나는 과연 얼마나 행복한가 자문해 보게 되더라고요. 은정님은 전반적으로 독일 생활에 얼마나 만족하시나요? 1) 10점 만점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실 건가요. 2) 해당 점수를 주신 이유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 때문인가요.     


육은정 : 10점 만점에 8점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어려움 때문에 만점은 주지 못하겠지만 사람들 의식 수준도 높고 예의 바르고 깨끗한 곳에 살면서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어요. 독일인의 근검절약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인드에 높은 점수를 주었어요. 근검절약하고,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함께 살아갈 미래를 조금이나마 밝게 해주는 듯해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뿌듯합니다. 독일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 지원도 만족합니다. 양육비는 외국인이던 자국민이든 간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고, 자녀 출산 후 육아 휴직을 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아이가 대학교까지 학비 없이 다닐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인데요. 학생들이 편안하게 돈 걱정하지 않고 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이 어떤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생각할 여유가 있답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남은 생을 생각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습니다.    


김유진 : 와, 8점이라는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셨군요. 이렇게 만족하신다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시고 독일에 계속 살게 될 확률이 높겠어요. 남은 생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까요.     


육은정 : 한국 분들이 독일에 정착하는데 비자 문제가 늘 힘든 거 같아요.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이라면 사업,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쪽으로 생각은 하고 있답니다.      


김유진 : 귀한 시간 내주시고 진솔한 독일 생활을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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