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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29. 2021

독일이 선진국임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는 순간

[인터뷰] 특별한 아이, 다운 천사를 키우는 신혜님!



인터뷰 기회 의도는 독일 거주 엄마들의 고유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줌의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문장을 자주 상기했어요. 신혜님을 통해 독일의 복지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답니다. 설문지 답변과 화상 인터뷰(12월 8일)로 만나 작성한 글입니다. 


김유진 : 안녕하세요. 다운 천사 다희와 신혜님 소개 부탁드려요.     


김신혜 : 며칠 전, 길을 가다가 백발이신 분이 성인이 된 다운증후군 아이를 데리고 가는 걸 봤어요. 아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이를 한쪽에서 꽉 붙드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먼 미래의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더 애틋하게 바라봐졌어요. 괜찮다고 하면서 제 딸도 다운증후군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때 서로 공감했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해요. 전 다운증후군 딸을 키우는 김신혜입니다.     


흔히들 다운증후군 하면 납작한 코, 눈과 눈 사이가 멀고 입이 벌어진 걸 생각하잖아요.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어 그런 모습이지만 사실상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다희는 엄마의 두상과 입술, 아빠의 쌍꺼풀 없는 눈을 닮았어요. 얼마 전 병원을 갔는데 마침 의사가 다희를 보고 Besonderes Kind!라고 부르는 거예요. 독일어 베존더러스(besonders)는 '특별한'이라는 뜻이랍니다. 인지나 언어, 신체 발달이 좀 늦지만 넘어진 친구를 보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서 안아주고 쓰다듬을 줄 아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이예요. 병원에서는 베존더러스라는 호칭보다는 다운 신드롬(Downsyndrom), 트리주미(Drisomie 21)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해요. 21번 염색체가 세 개라는 뜻으로요.     


김유진 : 다희를 처음 만난 순간을 통화하면서 짧게 들려주셨는데 감격스러웠어요. 정작 엄마는 뭔가 다름을 알아챘지만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의사와 간호사 평범한 기쁨의 반응과 그때 상황과 엄마가 느낀 감정을 좀 더 들려주시면 좋겠어요.     


김신혜 : 임신 기간에 딸인지도 다운증후군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셋째 아이는 딸이길 간절히 바랐기에 딸이라고 듣는 순간 그 감격은 지금도 생생해요. 출산의 고통도 사라지게 기뻤어요. 의사와 간호사는 열 달 동안 어떻게 모를 수 있냐며 의아해하면서 크게 축하했어요. 간호사가 의연하게 제 품에 아기를 안겨줬는데 벅찬 마음으로 품에 안은 딸을 보자마자 “다운증후군이야!”를 외쳤죠. 옆에 있던 남편은 갓 태어난 딸에게 할 소리냐며 화를 냈지만 사실이었어요. 두 아들을 낳았던 경험으로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대번에 알아챘어요. 혼란스러웠는데 의사와 간호사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에 놀랐어요. 오히려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거든요.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모르게 억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잠시 머뭇거렸던 게 생각나요.     




김유진 : 이제 겨우 네 살인 다희가 심장 수술을 했다고요. 그때의 힘듦은 이루 말할 수 없으셨겠어요.      


김신혜 : 다운증후군 아이는 심장에 구멍을 갖고 태어나요. 보통은 아이가 태어날 때 크게 울며 호흡하는 순간 구멍이 막혀요. 다운증후군 아이는 그럴 힘이 없어서 막히지 못하는지 다희는 심장에 구멍이 다섯 개나 있었어요. 그 당시엔 하지 않아도 될 수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괴롭고 생후 5개월 즈음에 구멍이 막혀 건강하게 지나는 사례가 있다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어요. 작디작은 아기 가슴에 칼을 대지 않게 해 달라고요. 구멍이 막히지 않아서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렸어요. 어른도 손에 조금만 베여도 아픈데 작은 아기 심장에 5cm가량 칼자국을 낸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어요. 수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kg은 돼야 해서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건강히 수술을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분유 양을 늘려나갔죠. 5kg을 조금 넘기고서야 수술할 수 있었어요. 독일 최고의 심장전문병원에서 한 수술이 잘 되었어요. 지금은 가슴의 흉터 자국을 보지 않는 이상 심장 수술을 했는 줄도 모르게 너무 건강해요. 뜀박질도 오빠들보다도 더 잘하고요.     



김유진 : 다희보다 위의 두 형제가 오히려 걱정된다는 말이 무척 반가웠어요. 그만큼 독일에서 다희를 위한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거니까요. 다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요.     


김신혜 : 독일에서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 할지 막막했어요. 다희를 낳고 집으로 오기 전 피검사를 했어요. 정확히 해두기 위한 절차였죠. 한 달 후 다운증후군이 확실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병원에서 다희를 위해 받아야 할 검사뿐 아니라 병원에 갈 때 동행해 줄 플레거린(Pflegerin,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방문해요. 병원과 연결된 적십자에서 나오신 분인데 집에 오셔서 다희가 받아야 할 심장검사, 청력검사, 피검사, 성장 발달검사 등의 스케줄을 병원과 연락해서 잡아 주셨어요. 병원 진료 시에는 함께 가주고요. 다희를 저 혼자 감당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지속적으로 함께하니 큰 힘이 됐어요.     


다희의 물리치료실도 알아봐서 예약해 주셨어요. 생후 6개월 이후는 Heipädagogischzentrum이라는 기관에서 나오신 분이 유치원에 갈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셔서 소근육 발달을 돕고요. 유치원에 다니는 지금은 물리치료사와 언어치료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희를 만나요. 신체 발달에 도움이 되는 물리치료는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김유진 : VIP, 부모가 걱정하지 않게 척척 해결해 준다는 얘기를 들으며 다희가 특별대우받는 느낌이에요. 다희도 스스로가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어려서부터 갖게 될 것 같아요. 다희가 언제 가장 특별하다고 느끼셨나요. 사소한 에피소드도 좋습니다.     


김신혜 : 네. 맞아요. 두 아들이 다니던 소아과에 다희도 다니는데, 코로나 전에 다희가 열이 39도여서 병원에 갔어요. 의사를 만나기 전 대기실에서 다희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함께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본 간호사가 다희만 다른 방으로 안내해 줬어요. 면역성이 약한 다희를 위한 배려예요. 독일은 병원도 예약 없이 가면 엄청 기다리잖아요. 한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리는데. 다희는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봤어요 겨울이면 소아과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맞으라고 연락이 와요. 다희뿐 아니라 온 식구들이 소아과에서 함께 주사를 맞아요. 코로나 예방접종도 고령의 어르신부터 순서대로 맞는데 저희는 다희 덕분에 빨리 맞을 수 있었어요.     





김유진 : 다희가 조금 늦된 아이일 뿐, 장애 아이라는 걸 자주 잊게 된다고요. 그만큼 사회적 시선이 성숙하다는 반증일 텐데 독일 사회가 선진국이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언제인가요.     


김신혜 : 솔직히 다희를 낳기 전에는 독일이 선진국이라고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한국보다 인터넷도 느리고, 관공서에 가면 일처리도 몇 날 며칠 걸리고 서비스가 전혀 없는 문화니 불쾌했던 경험이 많아요. 그런데 다희를 낳고 ‘아 이래서 선진국이구나'라고 느꼈어요. 다희를 출산한 병원만 해도 의사나 간호사 모두 평범한 아기로 대해줬으니까요. 독일에 사는 아이라면 누구에게나 주는 양육비에 더해 다희는 보조금을 받아요. 면역력 약한 다희에게 글리코가 들어간 건강기능식품을 사 줄 수 있어요. 덕분에 겨울이면 여지없이 찾아오던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아요. 장애인 카드로 기차, 버스, 트램을 독일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무료로 탑승할 수 있고요. 단 다희와 보호자 한 명이지만 그 덕분에 다희를 데리고 물리치료를 다닐 때 도움이 많이 됐어요. 다희와 어디를 가도 시선에서 자유로워요. 유심히 보는 사람도 없고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해 줘요.     




김유진 : 큰아이 반에 마음이 아프든 몸이 불편한 아이든 한 명은 있었는데 전담 선생님이 꼭 있었어요. 일반 아이들과 차별 없이 같은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다희도 그렇겠죠. 지금은 어떤 유치원을 다니나요?     


김신혜 : 통합 유치원에 다녀요. 정원이 스무 명인데 일반 아이가 15명이고 특수 아이가 다섯 명이 함께 있어요. 선생님은 총 세 분이 계세요. 전담 선생님이 필요할 경우 무료로 신청할 수 있는데 전 다희가 잘 따라가리라 믿고 따로 신청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다희가 대부분 잘하고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김유진 : 아무리 독일의 복지가 좋더라도 엄마가 감당하거나 힘든 부분이 존재할 텐데. 현재 가장 걱정되거나 힘든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김신혜 : 늦된 아이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인내하며 집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쉽지는 않아요. 무한 반복이지요. 특히 언어 발달이 느리니 다른 두 형제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말해줘요.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를 보면 "강아지가 작고 귀엽다" “다희처럼 아가인가” 쉼 없이 말해줘요. 예쁜 꽃을 보게 되면 꽃 가까이에 가서 만져보고 향기도 맡아보며 그 자리에 몇 분이고 머물러 있어요. 생활에서 알려줄 수 있는 걸 함께 느끼려고 노력해요. 바지를 입는 법도 무한 반복해야 하고요. 발 한쪽 넣기까지도 오래 걸렸어요. 한 백 번은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니 힘들죠. ‘이걸 더 해야 한다고?’ 부아가 치밀죠. '다희는 늦된 아이일 뿐이다, 다른 두 형제와 달리', 스스로 주문을 외워요. 조금 더 아니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결국엔 해내거든요. 더 많이 기다려주고 더 많이 얘기하면 돼요. 힘들다고 속상해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희는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생활 속에서 자연히 배우는 것도 많아요.     


김유진 : 어쩌면 신혜님과 다희에겐 독일이 이상적인 사회일지도 모르겠어요. 신혜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요.     


김신혜 : 네, 제 생각도 마찬가지로 다희가 독일에서 살아가는 것이 감사해요. 선입견 없이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사회가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독일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아요. 다희에게 필요한 서류 작성 시에만 써요.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더불어 가는 사회가 이상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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