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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Apr 03. 2023

그 놈의 코바늘이 뭐라고

기술 지수가 진화 중입니다


*브런치 독자님들, 아직도 거기 계신가요? 너무 오랜만(마지막 글을 올린 게 1년 전 즈임이군요)에 브런치에서 인사를 드려요. 이곳에선 어떻게 소통을 해야할지 어려울 때(?)가 있는데 네이버에서 부담없는 글들을 쓰다가 이웃님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웠답니다. 지난 1년간 제게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독일 로컬 식당에 취업도 했고 두 번째 책 계약도 했어요. 무엇보다 아직도 독일에 살고 있네요. 온기 없는 방에 들려서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해요. 이곳에도 종종 군불을 때고 싶어졌어요. 제 마음대로 기획해서 매주 수요일마다 에세이를 블로그에 발행하는데 그 글을 여기에도 올릴게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생애 처음으로 포장 이사가 아닌, 셀프 이사의 A부터 Z까지를 경험하고 난 후에야 인건비 비싼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완제품보다 이케아 가구가 유럽 사람들에게 왜 인기인지는 3개의 문짝이 달린 옷장을 장장 7시간에 걸쳐 조립하면서 알게 되었다. 독일의 법정 노동 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고로 오후 4시면 퇴근해서 옷장 하나쯤은 거뜬하게 조립할 저녁 시간이 충분하다.



매일 한 장씩 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남편의 와이셔츠는 990원이면 빳빳하게 다려서 배달까지 해주는 세탁소에 맡겼다. 10년 전 즈음 한국에서의 이야기다. 다림질이 필요한 옷은 애당초 사지도 않는 나와 달리 남편은 자기 셔츠는 주말마다 다섯 장씩 숙련된 손놀림으로 가뿐하게 다렸다. 독일 유학 초창기 때 아끼는 청바지가 찢어졌는데 그걸 친절한 주인집 할머니인 마리타가 재봉틀로 솜씨 좋게 기웠다. 그녀는 남편인 피터의 이발뿐만 아니라 자신의 머리도 직접 자르시는 신기술 보유자다. 우리 집 남자 둘은 현재 한 명은 이발할 머리카락이 부족하고 한 명은 장발로 기르는 중이라 비싼 이발비 걱정이 없다. 이발 기술이라도 배워둘 걸 하는 자책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친구 피트라는 남편이 작년 여름휴가 내내 화장실을 리모델링했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고 소식을 전했다. 클라우디아는 지난가을에 거실 바닥 타일을 다 뜯어서 새로운 타일로 교체하는 공사를 끝냈다면서 남편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바닥 공사하는 동영상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의 셰프만 해도 주말에 쉬었다 가면 어느 날은 새로 교체하고 페인트칠까지 완벽하게 해 둔 문짝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중고차를 싸게 구매해서 새 차로 변모시킨다. 본인의 취미는 레고 조립이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다. 물론 모든 독일인이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집 남자도 이젠 자전거쯤은 혼자 고칠 줄 알지만 집이나 자동차까지 스스로 고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딱 걸린 게 코바늘이다. 커터 칼과 가위 혹은 6cm 이상의 뾰족한 기구들은 기내로 가져갈 수 없다는 걸 몰랐다. 기가 막히게 Xray 화면에서 잡아낸 쇠 바늘이 어디 즈음인지 알 턱이 없는 나는 배낭 안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깔린 파우치팩을 꺼내고 잡동사니들을 헤집어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뒤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지루한 눈빛과 검색인의 눈빛까지 더해져 가방 여기저기를 더듬는 가여운 손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진다. 검색대 앞에서 코바늘을 찾아내는 건 낯선 이에게 정돈되지 않은 살림살이를 들킨 날처럼 민망해서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정체가 확인된 6cm 미만의 코바늘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고 기내로 반입 가능이다.



이 코바늘은 첫아이를 임신하고 신생아에게 입힐 신발과 모자를 뜰 때 썼다. 그걸 왜 독일에 오면서 챙겼는지는 모르겠다. 미천한 나의 기술력에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걸 예감한 걸까. 코로나 초반, 재봉틀로 드르륵 박아 마스크를 만들었다고 선물로 받을 만큼 재봉틀 갖춘 집도 많고 뜨개질 용품도 없는 게 없다. 검색대를 어렵게 통과한 코바늘로 매년 겨울이면 목도리를 뜬다. 4시면 해가 지는 겨울엔 단순노동에 빠지면 번뇌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저절로 몰입이 이루어져 하나의 결과물이 탄생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베이킹에 자주 손이 가는 이유도 비슷하다. 정해진 레시피대로 계량하고 숙성시키고 성형해서 오븐에 굽는 과정을 거치면 빵이 만들어진다.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하다. 초고를 하룻쯤은 숙성시켰다가 퇴고하는 과정에서 문장을 고르고 배열하는 일은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분량이 부풀었다가 덜어내면서 바람 빠진 도우처럼 푹 꺼지고 맛있어지는 순간이 가끔 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빵인고 싶은 정체성 모호한 글도 있지만 하나의 완성물이 탄생하는 기쁨은 비슷하다. 한코만 삐끗해도 다시 돌아가 바로잡는 것처럼 이상한 문장을 빼고 고치는 일은 뜨개질과도 닮았다. 단어를 더하고 더해서 글을 완성하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정직하게 늘려서 목도리가 완성된다.



발을 만지는 일은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모습과 흡사하다. 오장육부가 발안에 들어있으니 부위별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면 발바닥에서 심장 부위는 만지지 말고 그 주위를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준다던가 발뒤꿈치에서 발가락 쪽으로 역으로 문지르는 건 하지 않는 게 좋다. 노폐물이 역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굳은살이 생기지 않은 아이의 부드러운 발을 조몰락거리다 보면 빵 도우 같은 착각이 든다. 어학원에서 독일어 수업을 듣는 게 따분해서 기술이라도 배우면서 독일어를 배울 요량이었다. 지인 중에 끝내주게 마사지를 잘하는 분이 있는데 이분에게 등 마사지를 1시간만 받으면 한마디로 뿅 간다. 인건비 비싼 독일에서 뽕맛은 언감생심일 테니 직접 배워두면 어떻게든 쓸모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배 아픈 아이에게 소장과 대장 부위를 만져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륵스르륵 잠으로 빠져든다. 남편은 Termin(텔민, 약속)을 잡고 돈을 내라는데 막무가내로 눈치 없이 자꾸 발을 들이민다.



가족 중에 발 마사지를 해주겠다는데 거부하는 사람은 없다. 갓 구운 빵에도 환호하지만 목도리는 감동의 질이 다르다. 발 마사지 베이킹 그리고 뜨개질까지 가성비 끝내주는 기술이다. 글도 내가 만든 빵이나 목도리처럼 감동받고 환대받으면 좋겠다. 뭐든 척척 고치고 직접 만들어서 쓰는 게 일상인 독일에서 기죽을 때가 있는데 독일살이 7년 만에 나의 기술력도 점점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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