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의 시대 : 20세기의 문화와 사회>(까치, 2015)
회화나 조각과 같은 구래의 시각예술들은 최근까지도 순수한 수공 작업이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산업화의 일부는 아니었다. 덧붙이자면 그런 까닭에 그 예술들이 오늘날 이런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반면에 문학은 이미 500년 전 구텐베르크의 시대에 기계적인 복제에 적응했다. 시는 (인쇄술의 발명 이후에 사라진 예전 서사시의 경우처럼) 대중 공연을 위한 작품으로 남기를 원하지도, 중국 고전 문학에서처럼 서예 작품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시는 그저 알파벳 기호를 기계적으로 조합한 하나의 묶음일 뿐이다. 우리가 그것을 종이 형태로건 스크린에서건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접하는가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한편 음악은 20세기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악기와 청음 사이에 놓인 순전히 물리적인 소통의 벽을 허물었다. 우리가 오늘날 문화적 경험으로서 듣는 압도적인 대다수의 소리와 소음들은 우리에게-기계적으로 재생되거나 먼 거리에서 전송되는 식으로-간접적으로 다가온다. 이렇듯 각각의 뮤즈들은 이미 발터 벤냐민이 말한 복제의 시대라는 상이한 경험들을 했으며 상이한 방식으로 미래를 맞이한다.(p.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