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내 관심 인물 리스트에는 역할모델로 삼고 싶은 작가가 한 명 있다. 소설가이자 번역자, 신화 연구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윤기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그리스의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을 여러 권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나에게 카잔차키스가 전작독서를 하고 싶은 작가라면 이윤기는 글쓰기의 모범으로 삼고 싶은 작가다.
글만 읽어도 글쓴이가 그대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 이윤기가 그렇다. 그의 번역서와 신화 책도 좋지만 나는 산문과 소설에 더 자주 손이 간다. 특히 그의 산문은 읽을 때마다 가벼운 설렘으로 시작해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섬세한 시선부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감수성, 낯선 것에서 보편성을 포착하는 안목, 입말과 글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문장력, 개성 있는 문체에 이르기까지 본받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그는 내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대가다. 그래도 그의 책을 읽으며 낙담하지 않는다. 그저 더 열심히 읽고 배우고 싶을 따름이다. 그는 소리꾼으로 따지면 명창이다. 그런 그가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에서 이렇게 격려한다. ‘나’의 노래를 부르면 된다고. 그러니까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자는 말이다. 노래뿐만 아니라 글쓰기도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의 글을 쓰고 나의 삶을 살면 된다. 어떻게? 그 실마리도 그의 글에서 얻었다.
오래전, 정확하게는 1998년 가을 이윤기는 흰 종이에 삼각형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삼각형의 세 변 각각에 이렇게 적었다. ‘안 쓰고는 못 배길 것 같은 소설 쓰기’, ‘내가 가본 길을 세상에 전하는 저술 행위’, ‘옛사람들이 간 길을 현대인들에게 일러줄 고전 번역’. 그는 앞으로 20년 동안 이 세 가지를 실천하여 삼각형을 완성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했다.
이윤기는 날마다 하는 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곧 ‘삶의 골수’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을 채우는 세 가지는 그에게 매일 해야 하는 밥벌이이자 하루를 기쁘게 하는 놀이, 삶의 신비를 궁리하는 공부, 세상과 나누고 싶은 보물이기도 했다. 비록 20년을 채우지 못했으나 이 셋에 성실함으로써 그는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나도 그를 따라 삼각형을 그려보았다. 세 변에 각각 다음과 같이 적었다. 관심사(특히 인물) 탐구, 심층심리학 공부, 이 둘을 바탕으로 책 쓰기. 이 세 가지는 일과 놀이와 학습을 통합하는 방편이자 진정 나답게 사는 길이다. 무엇보다 나를 닮은 세계를 만드는 매일의 실천이다.
아마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윤기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일 것이다. 소울메이트라고 불러도 좋을 두 사람은 서로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이윤기는 카잔차키스를 책으로 만났고 나도 두 사람을 책으로 만났다. 나는 책으로 이윤기와 카잔차키스를 여행하고 있다.
독서는 사람 여행이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최고의 인물 누구나 만날 수 있다. 책으로 시공을 가로질러, 내가 원할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사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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