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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술과 책의 삼위일체

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by 홍승완 심재

앞서 여행과 책을 결합한 ‘현장 독서’에 대해 얘기했다. 여기에 술을 더해보면 어떨까? 이른바 ‘현장 음주 독서’. 여행지에서 그곳과 인연 깊은 작가의 책을, 그곳의 공기와 분위기를 느끼며, 거기에 어울리는 술을 곁들여 읽는 일. 잘만 조합하면 맛있는 술과 깊은 책으로 매혹적인 여행이 될 수 있다.


술은 일상의 음료가 아니다. 술 마시고 운전하면 안 되고, 일할 때 술 마시면 잘리기 십상이다. 보통은 낮에 술 마시는 일도 드물다. 여행 중이라면 어떨까? 낮에 술 한잔하는 여행객은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술을 멀리하더라도 여행 중엔 조금씩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왜일까? 술과 여행은 익숙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을 벗어난 자유, 일종의 일탈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어떤가? 책도 술처럼 일상적인 물건은 아니지 않은가? 스마트폰이 책을 대신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여행만큼은 아니더라도 책은 독서라는 행위와 함께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든다. 우리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즉 실용적인 목적으로 책을 읽을 때도 많지만, 또 그만큼 여행하듯 일상을 벗어나거나 새로운 세계를 거닐기 위해 책을 손에 들기도 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여행과 술이 일상의 떠남이고 독서도 그러하다면 이 셋이 잘 어울리는 것도 우연은 아니겠다.


내게는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들어와 시간이 흐르며 깊이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나서 책을 통해 인연을 맺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음속 벗 또는 관심 인물이라 부르는 이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한 사람의 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에서 그가 즐긴 술을 마시며 그의 책을 읽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2023년 가을 칼 융의 자취를 따라 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아침에는 취리히 호수 부근 볼링겐 마을에 융이 손수 지은 둥근 탑 형태의 돌집을 찾아가고, 낮에는 취리히 퀴스나흐트에 있는 융이 오랫동안 살았던 집을 방문했다. 현재 융의 집은 C. G. 융 퀴스나흐트 재단(The Foundation C.G. Jung Küsnacht)에서 융이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공간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고, 융의 저서와 그가 생전에 사용한 다양한 물건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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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볼링겐 돌집과 융 하우스 / 사진 출처 : 홍승완


나는 볼링겐 돌집과 융 하우스를 찾아가는 동안 그의 책을 읽었다. 특히 융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드나든 그의 서재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즐겨 피운 시가 냄새가 나서, 마치 지금도 그가 이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서재의 경우 사진 촬영 금지라서 그 모습을 남기지 못해 아쉽다. 그날 저녁에는 와인을 즐긴 융을 떠올리며 스위스에서 제조한 와인을 마시며 그날의 여행 일기를 쓰고 융의 책을 읽었다. 한 인물과 그가 머문 공간, 그가 쓴 책이 와인 한잔과 함께 겹쳐졌다.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image.png?type=w1600 스위스에서 융의 책을 읽으며 마신 와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특히 위스키를 즐기는 하루키 독자라면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을 손에 들고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로 떠나 하루키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가 머물렀던 공간에서 그의 책을 읽으며 그가 소개하는 위스키를 입에 담아보라. 애정하는 작가와 색다르게 교감할 수 있으리라.


하루키는 어떤 술이든 그 술이 빚어지는 고장에서 마셔야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보기엔 책도 다르지 않다. 그 책을 쓴 공간에서 읽으면 책의 본연에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고백하건대 나도 언젠가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싶다. 그때 하루키의 책을 들고 갈 생각이다. 그 책에 나오는 공간을 한두 곳이라도 가보고 싶다. 그 공간에서 그의 책을 읽으며 위스키 마실 걸 생각하면 벌써 설렌다. 지금은 별로 친하지는 않은 하루키, 그리고 낯선 외국어 같은 위스키와 조금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여러 글을 통해 길게 풀어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현장 독서’에 ‘주책’을 결합해보라. 여행과 술과 책의 콜라보! 술, 책, 여행, 이 셋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 우리는 전혀 새로운 독서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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