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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견디는 방법

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by 홍승완 심재

아흐메드 카스라다(Ahmed Kathrada)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와 함께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인물이다. 그는 만델라의 오랜 동지로 무려 26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에서 그가 마주한 현실은 엄혹했다. 정치범에게 특히 가혹한 환경에서 기본적인 자유마저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image.png?type=w1600 아흐메드 카스라다와 넬슨 만델라 /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비참한 현실에 절망할 법도 한데 카스라다는 감옥 안에서 스스로 단련하고 자신만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택한 방법은 필사(筆寫)였다. 감시의 눈을 피해 어렵게 구한 책과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하나 옮겨 적으며 혹독한 시간을 견뎠다.


카스라다에게 문장을 기록하는 일은 하나의 기도였다. 흔히 기도는 신에게 소원을 비는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럴까?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oren Kierkegaard)는,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바꾸지 않으며, 다만 ‘기도하는 이의 마음’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달리 말하면 기도는 어떤 상황을 기도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바꾸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문장 필사라는 카스라다의 기도는 감옥의 물리적 현실을 바꿀 순 없었지만 감옥을 견딜 수 있는 정신을 만들어 주었다.


image.png?type=w1600 카스라다의 필사 공책 중 일부 / 사진 출처 : 미상


틈틈이 수집한 훌륭한 글귀는 그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공책에 문장을 손으로 베껴 적으며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으며, 자유를 빼앗긴 상황에서 정신적 자유와 존엄을 지켜냈다. 그가 옮겨 적은 구절 중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1972년 12월호에서 고른 다음과 같은 문장도 있었다.


지구를 어떻게 지켜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작은 정원을 가꾸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는 이 문장을 곱씹으며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닫는다.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도 ‘소박한 자유’를 포기하지 않아야 비로소 ‘보다 큰 자유’라는 꿈을 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가 소박한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던 열쇠는 마음을 울리는 격언을 베껴 쓰는 일이었다. 카스라다는 속담, 경구, 시, 희곡, 소설, 잡지, 신문 등에서 발췌한 수천 개의 문장들로 총 7권의 공책을 채웠다.


흔히 특별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거창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실은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어온 글귀를 마음을 다해 옮겨 적기처럼 단순한 방식이 역경을 극복하는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감옥에서 그의 육신은 갇혔지만 그의 정신은 자유를 꿈꿨다. 독서와 필사에 몰두하는 동안은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었다. 기나긴 ‘투옥 기간 동안 커다란 힘을 준 인용구들을 적은 공책 7권’은 그에게 가장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석방된 나는 여러 개의 종이 상자를 챙겨 나왔다. 그 안에는 내 소중한 재산이 들어 있었다. (...) 수많은 글귀를 옮겨 적어 놓은 공책 일곱 권이었다. 이 공책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문장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갈 때마다 기분이 한결 좋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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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라다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저서와 국내 번역본 / 사진 출처 : 아마존, 알라딘 홈페이지


카스라다의 이야기는 좋은 글과 필사의 힘을 보여준다. 필사를 하는 이유는 그저 글을 베끼는 게 아니다. 좋은 글을 읽고 옮겨 적으며 내면을 비추어 보고 수양하는 행위다. 매일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공들여 필사하는 가운데 정신을 정갈하게 가다듬고 천천히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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