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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로 스스로를 벼리다

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by 홍승완 심재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은 본인 인생을 이렇게 함축한다.


‘축구 인생 50년, 독서 인생 30년, 노트 인생 15년’


그가 말하는 ‘노트’란 독서 노트를 가리킨다. 손웅정의 독서 노트는 앞서 소개한 카스라다의 일곱 권의 공책과 내용은 하나도 같지 않겠지만 본질은 매우 비슷하다. 손웅정의 표현을 빌리면 ‘이 보잘것없는 독서 노트의 목적’은 그저 스스로를 위해 시작한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쓰는 일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카스라다처럼 그 역시 15년 넘게 독서 노트를 쓰며 자기 자신을 벼렸다. 마음과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하여 강하게 만들었다.


image.png?type=w1600 손웅정과 그의 독서 노트 / 사진 출처 : '난다' 출판사


손웅정은 아들이 어린 나이로 독일로 축구 유학을 떠난 무렵부터 독서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참 힘든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아들과 함께 갈 수 없었고, 아들은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열일곱 살의 나이로 언어도 문화도 완전히 다른 타국에서 홀로 혹독한 훈련을 해야 했다. 더욱이 프로 축구단과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한 상태였기에 미래 또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아버지가 책 읽기를 넘어 독서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고 일상의 중심을 잡기 위함이었으리라.


image.png?type=w1600 손웅정의 독서 노트 / 사진 출처: 한국일보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1711350002941?did=NA


아들은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성실하게 유학 프로그램을 끝내고 드디어 독일 함부르크 구단과 3년 계약을 맺게 된다. 아버지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아들의 숙소 근처 허름한 호텔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도 아버지는 매일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썼다.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태도로 하루하루 독서 노트를 써내려 나갔다. 마음에 깊이 들어온 책의 구절은 네 번 다섯 번씩 반복해서 적기도 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좋은 책은 보통 세 번 이상 읽어요. 처음 읽을 때는 검정 볼펜, 두 번째 읽을 때는 파랑, 세 번째 읽을 때는 빨강 볼펜을 쓰는데요. (...) 외워야겠다 싶은 문장에는 줄 박박 치고, 사자성어나 새길 단어에는 별 표시도 하고, 나중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 싶은 나름의 생각거리들은 메모를 해두죠.


(...) 쓰지 않으면 머릿속에 책이 한 권도 남지를 않아요. 독서 노트 다 쓴 다음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지나고 나서 또 한 번씩 읽어봐요. 그사이 읽은 다른 책들 내용 중에 추가로 업그레이드 시킬 부분이 있으면 또 메모를 해두고요.”


역시, 그도 심독(深讀)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따로 기록해 둔다. 그의 말대로 ‘읽고 쓰기’, 아주 단순한 일이다. 매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도 아흐메드 카스라다처럼 독서와 기록이라는 단순한 행위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다.


읽은 것을 기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아주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독서 노트는 내가 읽고 쓴 것을
내 몸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노트가 아니라
내 몸에 글씨를 쓰는 일이다.
- 손웅정
- 손웅정 저,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난다,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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