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Liber_책을 사랑하는 시간, 공간, 인간
지금부터 내가 필사를 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는 나의 책 쓰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나는 책을 쓸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래 3가지는 반드시 지킨다.
1. 집필 원칙을 세운다.
2. 매일 책 쓰기 의례(Ritual)를 실천한다.
3. 핵심 독자 한 명을 품고 쓴다.
책을 쓸 때마다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 한 명을 정한다. 보통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주변 지인 중에 한 명을 고른다. 이 책의 경우, 처음엔 책을 좋아하는 지인이나 독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친구를 핵심 독자로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좀 엉뚱하게도 다른 인물이 계속 떠올랐다. 바로 조셉 캠벨.
맞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신화학자다. 캠벨은 뛰어난 독서가이고, 그의 독서 방식에 난 큰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내가 인생의 겨울에 처했을 때 귀중한 영감으로 나를 일으켜주었으며, 영혼을 깨우는 ‘인생 문장’을 선물해 주었다. ‘캠벨이 밑줄을 그으며 읽고 싶은 책을 쓴다.’ 내가 이 책을 준비하며 세운 집필 원칙 중 하나다.
나는 책을 집필할 때마다 책 쓰기 의례를 정해 둔다. 이 책을 쓰며 수행한 리추얼은 조셉 캠벨의 <신화와 인생> 필사다. 매일 책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화와 인생>, 정확하게는 이 책의 목차에서 ‘도입의 단계: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에 담긴 내용을 순서대로 내가 정한 분량에 맞춰 빨간색 겉표지의 노트에 옮겨적었다. 캠벨의 정신에 좀 더 깊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신화와 인생> 원서를 구해서 영어로도 같은 문장을 같은 방식으로 필사했다.
캠벨의 방대한 저작에서 특별히 이 부분을 고른 이유가 있다. ‘도입의 단계’에 담긴 문장들은 ‘캠벨 사상의 정수’를 응축하고 있다. 이 책을 엮은 다이앤 K. 오스본(Diane K. Osbon)은 평소 캠벨이 강조한 교훈과 그의 사상에서 노른자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몇 문장씩 묶어서 ‘도입의 단계’를 구성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다음과 같이 필사했다. 먼저 <신화의 인생> 우리말 번역본에서 ‘도입의 단계’에 실린 몇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고, 한글 문장 밑에 원서에서 같은 문장을 찾아서 영어로 적는다. 매일 한 글자, 한 글자 베끼고 나서 그 내용을 조금 큰 목소리로 천천히 네 번 이상, 평균 여덟 번 낭독한다. 울림을 주는 캠벨의 문장을 필사와 낭독을 통해 내 손과 목소리로 환대하고 그윽하게 공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몇 문장을 ‘나에게 하는 말’ 내지는 ‘오늘의 문장’으로 삼아서 수시로 되뇌며 생활했다.
내가 심독과 필사에 더해 낭독까지 하는 이유는 캠벨의 정신과 사상을 온전히 내면화하고 싶어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독서는 체화가 중요하다. 읽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기본은 심독(深讀), 즉 깊이 읽기다. 다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필사와 낭독은 책과 문장을 정신뿐 아니라 온몸에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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