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꺼진 뒤_ <Mamma mia: Here We Go Again >
저 멀리 춤과 노래가 한가득 밀려온다
기쁨과 든든함을 안고 온다
삽시간에 밝음이 번진다
가족이다
생기 없는 그리스를 보는 것보다 더 기운 빠지는 일이 있을까
그것은 죽은 이의 이루지 못한 꿈을 회상하는 것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 그토록 활기차던 대지는
평범해져버린 공기 속 구름 가득 낀 하늘 아래 놓인다.
울먹이는 차분함 속 꺼진 불꽃과 피어나지 못한 불꽃들을 헤아린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불꽃의 연기를 새로 피우는 불꽃 맡에서 더듬는다.
왜 아바의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 벅차오르는 눈물을 짓게 만들까?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노래는 무엇이 그리 특별하길래, 여태껏 알 수 없는 기쁨과 솟아나는 힘을 담고있는걸까?
수많은 노래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등장하지만,
아바 노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것의 앞과 뒤가 한결같이 경쾌하다.
내가 꾸던 꿈이 나를 배신해도,
기다리던 이가 내게서 떠나가도,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상황 속 아무리 가슴이 찢기고 무너져 내려도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절망감을 가져다주는 원인이 한 때 그들을 춤추고 노래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들일지라도,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뒤에서 앞으로 위치가 달라질 뿐이다.
그렇게 또 다른 춤과 노래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불꽃으로 쏘아 올려진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경쾌함의 근원은 부정이 아닌 포용이다.
그래서 강하다. 아바의 노래는 그렇기 때문에 강하다.
부정에서 나오는 경쾌함과 포용에서 나오는 경쾌함은 겉으로 보기엔 한 끝 차이다. 그래서 가슴이 알아보곤 한다. 겉으로 구분이 가지 않는 밀도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곳은 늘 가슴 깊숙한 쪽이다.
그것을 알아본 그 깊숙한 곳은 미간으로, 눈 아래로, 입 끝으로,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도달해 신호를 보낸다.
전자의 경쾌함만을 아는 이는 후자 또한 '얕다'고 평가하며 그 깊이를 폄하한다. 자신들이 가본 적 없는 깊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강인한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깊이는 “고맙습니다” 라는 단어로 간혹 쉽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곤 한다. 감사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포용에서 나오는 힘은, ‘함께’일 때만 가능하다.
<맘마미아1>이 생동감 넘치는 그리스의 활기, 활력을 담아 그리스라는 동맥의 맥박을 짚어 보여주는 듯 했다면
<맘마미아2>는 가장 활기차던 곳의 불빛이 다 꺼지고 난 다음, 그 뒤를 보여준다. 축제의 그리스가 꺼지고 난 뒤, 다시 그것을 어떻게 피워 올리는지 그 과정을 담는다.
그 과정은 이젠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는 불꽃의 연기, 그 흔적을 더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꺼진 불꽃은 새로운 불꽃과 만나 현재로 다시 피어나고 빛을 되찾는다.
결국 모든 것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You can dance
You can jive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See that girl
Watch that scene
Dig in the dancing queen
그렇게 삶에서 또 다른 축제를 이어간다.
아직 곁에서 그 춤과 노래를 함께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기 때문에.
다큐져니 옆동네산책 #7
영화 <Mamma Mia: Here We Go Again! (맘마미아2)> (2018, Ol Parker)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면, <맘마미아1>을 본 뒤 <맘마미아2>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는 채로 영화를 보길 추천하고 싶다.)
2018.07.26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1)
영화를 보던 중, 엄마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노래는 <Fernando>라고 알려줬다.
<I have a dream>인 줄 알았는데.
(2)
나는 확실히 알아
오늘의 불꽃놀이는 끝나지 않을 거야
<이지금>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