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달린 키링을 본 누군가가 물었다.
“키티 좋아하세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냥....이상하게 좋아요....”
굳이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어색해진다.
그냥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괜히 마음이 편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은데,
다큰 남자가 키티를 좋아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묘하게 궁금해한다.
“언제부터요?” “왜요?”
그럴수록 나는 더 짧게 웃는다.
좋아하는 데 이유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
아내는 마이멜로디 캐릭터를 좋아한다.
나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산리오 캐릭터에 둘 다 애정이 있어서
일본이나 해외에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편집숍을 찾게 된다.
취향이 비슷하다는 건,
함께 시간을 쓰는 방식이 닮아 있어 좋다.
후쿠오카 골목길에 있는 작은 편집샵에 갔을 때도,
발리의 리조트 안에 숨어 있던 편집숍을 발견했을 때도,
우리는 각자 다른 캐릭터를 향해 움직인다.
아내는 마이멜로디 굿즈를 구경하고,
나는 키티 쪽으로 슬쩍 걸어간다.
그러다 서로가 뭔가 마음에 드는 걸 하나쯤 발견하면
“이거 어때? 당신 스타일인데?” 하고 보여주기도 한다.
그 순간이 좋다.
서로의 취향을 잘 안다는 게,
말 없이도 통하는 것 같아서.
꼭 뭘 사는 건 아니다.
키티 얼굴이 박힌 볼펜이나 키링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음, 그냥 보기만 하자’ 하고 내려놓고 나오는 일이 더 많다.
그 멈칫하는 순간이 이상하게 마음을 안정시킨다.
딱히 소유하지 않아도,
그냥 거기 있는 키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잠깐 쉬어가는 기분이 든다.
키티는 말이 없다.
감정 변화도 없다.
늘 같은 표정으로 조용히 그 자리에 있다.
요즘처럼 모든 게 시끄럽고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그 고요함이 은근한 위로가 된다.
크게 튀지않으면서,
어디에 있어도 자신만의 존재감이 뚜렷한 캐릭터.
그게 참 좋다.
내가 키티를 좋아한다는 말은
‘귀여운 걸 좋아하는 어른’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감정이 복잡해질때마다 단순한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집 안 곳곳에는 키티가 아주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띄지 않는 가방 안쪽 키링,
이어폰 케이스에 붙은 작은 스티커, 책상 위 피규어,
누군가 주고 간 엽서 한 장.
그게 전부인데,
그 작은 것들이 내 하루의 무드를 바꿔놓는다.
어릴 땐 좋아하는 걸 말하는 게 쉬웠다.
근데 어른이 되고 나니까
좋아하는 걸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왜 좋아하느냐’보다
‘그걸 왜 아직도 좋아하느냐’는 질문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
예전엔 이런 취향이 있으면
철이 안 든 것 같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그래서 이제 누가 물으면
크게 웃으면서 말하련다.
“응, 키티 좋아해요. 이상하게 좋아요.”
그리고 그 말 안에는
조용한 자신감 같은 게 담겨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