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보려고 해.
나는 모든 게 느렸다. 대학 때 친구들이 모두 핸드폰을 들고 다닐 때, 혼자 삐삐를 들고 다녔다. 사람들이 싸이월드에서 오래된 인연들을 다시 만나고 소식을 주고받는 소란 속에서도 미니홈피를 전혀 가꾸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세상을 뒤덮을 때도 나 홀로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주변의 성화에 못 이겨 꾸역꾸역 세상과 호흡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한참 지각생이었다.
처음 카카오톡을 깔았던 날을 기억한다. 이건 어떻게 쓰는 물건인고. 탐색을 시작하기도 전에 친구들 메시지가 도착했다. 응? 내가 스마트폰 샀다는 얘기도 안 했는데? 카카오톡을 깐 건 어떻게 안거야? 전화번호가 등록된 친구가 카카오톡을 깔면 자동으로 새 친구로 뜨는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세상의 스마트함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렇게 친구들 리스트를 살펴보지도 못한 채 채팅창에서 채팅부터 하면서 스마트한 세상에 탑승했다.
내 친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전화번호만 저장해도 카카오톡 친구! 승낙 버튼 하나만 누르면 페이스북 친구! 어떤 것 하나만 연결되어 있으면 모두들 친구라는 이름표를 달고 내 주변을 둘러쌌다. 작정하면 하루에 친구 백 명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친구의 범위는 너무도 넓고 복잡하게 뻗어 나갔다. 사람들이 “내 친구 중에~”라고 말을 시작했을 때 두 사람 사이를 대충이라도 가늠해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쯤 되면 ‘정말 소중히 여기는 친구’를 의미하는 다른 단어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관계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있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부피는 정해져 있다. 물론, 그 넓이와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은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관계에 쏟아부을 수 있는 시간과 애정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넓이와 깊이가 한꺼번에 팽창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정도 범위의 사람들과 어느 정도 깊이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 가늠해 봐야 한다.
나는 얇고 폭넓은 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에너지를 쏟고 싶다. 많은 친구들이 주는 신선함보다는 가까운 몇몇 사람이 주는 다정함이 지금 나에게는 더 달콤하다. 나는 이제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친구가 되려는 노력보다는 친구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 보려고 한다. 소중한 사람들을 더 깊이 끌어안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보면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다.
과연, 내 친구들은
내 삶을 잘 담아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