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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Sep 24. 2020

그때가 내 인생의 여름이었던 것 같아.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분명 어떤 기억은 오히려 시간의 힘을 받아 미화되고 더 짙어지는 까닭에,

가끔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잊을 수 없음에..

나는 무력해진다.


꾹꾹 눌러 담아놓고 닫아놓은 마음이 불현듯 팝콘처럼 터져 나오면,

흩어진 마음들을 다시 담아내는 것이..

어찌할 바 모르는 마음들과 홀로 직면하는 것이.

아직도 그렇게 애달프게도 시리다.


4년을 만났고, 4년이 흘렀다.

이제 우리의 시간보다 각자의 시간이 더 길어지는데도,

다른 누굴 만나도, 또 다른 기억으로 덮어도,

대체 불가한 그 시절 나의 여름같던 청춘.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3년이나 흘러서,

나는 내가 퍽이나 괜찮아진 줄로만 알았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고 통화할 때만 해도 마냥 반가운 마음에, 나는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얼굴을 본 순간.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처럼 똑같은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전혀 괜찮지 않음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후회해도 이미 늦은 내 마음은 흩어진 채 기억의 파도 끝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때가 내 인생의 여름이었던 것 같아."


"지금은?"


"지금은.. 초가을?

선선한 바람도 불고 좋지만.. 가끔 쓸쓸하고."


"언제가 더 좋아?"


"여름이 더 좋지. 방학 같은 시기잖아.

해변가도 놀러 가고, 밤하늘의 별도 보고.

근데 지금도 좋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넌?"


"난 오빠랑 있을 때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내가 속 많이 상하게 하기도 했어도?"


"응. 그래도 오빠랑 같이 있을 때 제일 재미있었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추억이 너무 많아."


"응 나도 동감이야."


(추억 이야기 중..)


"오빠. 그래도 나는 다시 이걸 꾹꾹 눌러 담고,

나의 가을을 살아야 하는 거지?"


"나의 가을..

응. 나의 가을을 살자. 예쁜 추억이 너무 고마워."





이별한 것은 4년 전인데,

그 이별도 내가 결정한 것이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별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의 나는 그런 사람을 또 만나는 것이, 아니 그런 사랑을 다시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힘든 이별을 결정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족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타인이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마음과는 다른 슬픔이었다.


지금의 나는.. 무력함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흩어진 추억 조각들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서 더 깊숙한 마음 구석 어딘가에 꽁꽁 쌓아두는 것뿐이다. 그리고 아마 다시 꺼내보기까진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겠지.


왜 서로를 이토록 잊지 못하면서, 그때의 여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왜 안되냐고 묻고 싶지만..

나는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워하는 것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다르기에

다시 만나 여름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음을,


무엇보다도,

상대의 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갈 곳 잃은 내 마음을 최선을 다해 다독이는 것뿐임을.. 

나는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여기저기 먼지처럼 떠다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응. 어디에 있더라도 오빠의 가을을 응원해.

나의 예뻤던 여름. 고마웠어요."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가을로 돌아와서

지금에 집중해서 살다 보면 또 어느 순간 괜찮아지겠지.


다시, 나의 가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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