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목소리를 듣고 통화할 때만 해도 마냥 반가운 마음에, 나는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얼굴을 본 순간.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처럼 똑같은 그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전혀 괜찮지 않음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후회해도 이미 늦은 내 마음은 흩어진 채 기억의 파도 끝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때가 내 인생의 여름이었던 것 같아."
"지금은?"
"지금은.. 초가을?
선선한 바람도 불고 좋지만.. 가끔 쓸쓸하고."
"언제가 더 좋아?"
"여름이 더 좋지. 방학 같은 시기잖아.
해변가도 놀러 가고, 밤하늘의 별도 보고.
근데 지금도 좋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넌?"
"난 오빠랑 있을 때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내가 속 많이 상하게 하기도 했어도?"
"응. 그래도 오빠랑 같이 있을 때 제일 재미있었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추억이 너무 많아."
"응 나도 동감이야."
(추억 이야기 중..)
"오빠. 그래도 나는 다시 이걸 꾹꾹 눌러 담고,
나의 가을을 살아야 하는 거지?"
"나의 가을..
응. 나의 가을을 살자. 예쁜 추억이 너무 고마워."
이별한 것은 4년 전인데,
그 이별도 내가 결정한 것이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별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의 나는 그런 사람을 또 만나는 것이, 아니 그런 사랑을 다시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힘든 이별을 결정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족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타인이 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마음과는 다른 슬픔이었다.
지금의나는.. 무력함을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흩어진 추억 조각들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서 더 깊숙한 마음 구석 어딘가에 꽁꽁 쌓아두는 것뿐이다. 그리고 아마 다시 꺼내보기까진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겠지.
왜 서로를 이토록 잊지 못하면서, 그때의 여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 왜 안되냐고 묻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