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재용 Jan 16. 2023

닭장에 여우 들어가

베트남 암벽 개척기(Huu Lung지역)

Huu Lung, 닭장에 여우 들어가다

(베트남 코리안 루트 개척기)

꿈 같이 흘렀다. 시골길, 푸짐한 소똥 가득한 길이 5D로 떠오른다. 아, 그곳이 천국이었나 싶은 것이다. 


하노이에서 북동부,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에 ‘랑손’이라는 지방이 있다. 랑손에서도 다시 북동부 끄트머리로 가면, 카르스트 지형이 감싸 안은 후룽(Huu Lung, 베트남어로 ‘흐으룽’이 보다 가까운 발음이겠으나 영어 표기와 발음의 편의상 ‘후룽’으로 쓴다) 마을이 나온다. 랑손성 후룽현, 이 마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벽등반지 임에도 베트남에서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등반 코스로 개척되지 못한 바위가 노다지로 널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7여년 전, Jean Valley를 비롯한 프랑스 등반가들이 이 석회암 바위지대를 처음 발견했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고, 현재 랑손 지역 대부분의 암벽을 그들이 개척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당국과 이들의 허락을 얻어 프랑스 등반가들이 힘에 부쳐 개척하지 못한 바위들을 개척했는데 12월 10일, 베트남에서의 첫번째 코리안 루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4월, 후룽에 처음 갔을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반지의 제왕 사우론 같은 바위가 여기도, 저기도 올랄라, 지천에 우뚝 솟아 있었다. 경이로운 바위들을 보고 주영*(본지 22년 3월 11일 발행, ‘전설의 Bad Boy, 주영’ 칼럼 참조) 선배님은 ‘지구에서 가장 등반하기 좋은 곳이다. 미개척 암벽이 이렇게 많은 곳은 처음이니, 이 나이에 내 피를 끓게 만드는구나’, 호곡장론의 연암이 주영의 몸을 얻어 감탄하듯 포효했었다. 그때 우리는 닭장에 입장권을 얻은 여우였다. 등반을 즐기면서도 연말에 개척할 바위를 눈 여겨 봐 놓았고, 연말이 되어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하던 차에 하노이에서 실내 인공암벽장을 운영하는 프랑스 등반가 Jean Valley의 흔쾌한 요청이 도착한다. 때를 맞춘 기막힌 타이밍에 표정관리를 하며 짐짓 몸을 풀고 견갑골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마지못해 들어가는 체했지만, 사실 지금 우리는 닭장에 들어가는 여우다. 후룽 가는 날, 새벽같이 공항에 모인 우리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Huu Lung, 닭장에 여우 들어간다. 


순천안명, 낙천지명의 삶에 빠져 있었다. 양들 무리에서 길러진 새끼 호랑이는 풀을 뜯어먹었고 메~ 소리를 내며 시시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그 모양을 보다 못한 성체의 호랑이는 그 어린 호랑이를 데리고 연못으로 갔다. ‘네 모습을 똑바로 보아라,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호랑이의 포효가 너의 목소리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란 호랑이는 마침내 산천이 떨고 지축이 진동하는 우렁찬 소리로 포효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는 풀을 뜯어먹지 않았다.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육근을 씹어 먹었다. 되찾은 야수의 눈빛은 안온한 축생의 삶이 아니었다. 




미국 남가주산악회 소속의 거벽 등반가다. 1970~80년대 요세미티 대암벽 엘케피탄(10여 차례 등반)과 알프스 3대 난벽 아이거북벽, 북미최고봉 데날리(6,194m), 히말라야 트랑고 타워를 국내 최초로 등반하고 중국에 100개 이상의 암벽 루트를 홀로 개척한 세계 거벽등반의 선구자. 80년대 한국 산악계에 Bad Boy 신드롬을 일으킨 거벽 등반계의 대부


후룽의 바위들을 보는 순간, 내 몸에 각인된 산이 되살아났다. 그렇다, 나는 산으로 각인된 몸이었고 나를 보는 후룽의 암벽들도 내 몸이 새겨진 산이 되었다. 히말라야 눈발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어깻죽지로 30여분을 버텨 올라온 뒤 산을 증오했었다. 길 아닌 길에 들어서서 길을 내며 걷는 일을 천역으로 여겼다. 그 또한 오래된 일이 되어버렸다. 아 언제였던가, 산에서의 증오와 환희와 절망과 황홀은 내 삶에서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코리안 루트를 내던 그날, 바위 크랙에 스토퍼를 찌르며 추락에 저항하고 만유인력에 반항하며 오르던 때 그 모든 게 되살아났던 것이다. 

드릴, 볼트, 너트, 사다리, 스카이훅, 후렌드, 스토퍼 무수히 많은 장비들이 치이잉, 착, 후욱 소리를 내며 바위 밑, 첫 길 낼 준비를 마친다. 살아있는 전설의 등반가, 주영 선배님이 볼팅 작업에 돌입한다. 한 살이라도 젊은 후배가 먼저해야 할 일인데 그는 장유유서의 문화를 존중하자며 직접 솔선수범한다. 나는 바위 아래에서 그를 자일로 확보하며 전문가의 동작과 손끝을 감탄어린 눈으로 사진 찍듯 유심히 관찰한다. 오십견과 팔꿈치 통증을 참아가며 가장 어렵다는 첫 세 개의 볼트를 마무리하고 무사히 내려온다. 바위에 매달려 볼팅하는 동안의 확보물 설치법과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곧바로 내가 투입된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스카이 훅을 걸고 바위에 대롱 대롱 매달릴 때, ‘기분이 좋지 않’지만, 기분 나쁜 희열의 역설을 설명할 수는 없다. 사실 생각이 없어지므로 벽에 붙어 있을 때가 나는 좋다. 생각은 없어지고 오로지 살겠다는 집념과 오르겠다는 의지만 남은 존재의 종자 하나가 있을 뿐. 그때였다. 작은 스카이훅이 빠지직 소리를 내더니 ‘핑’소리를 내며 바위에서 빠진다. 나는 순식간에 떨어진다. 추락. 류학열 선배님의 경험 많은 확보가 아니었다면 아주, 많이, 추락했을 테다. 추락을 먹고 흰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의욕은 상실됐지만 끝까지 오른다. 마지막 구간을 어렵사리 올라서 루트를 완성하고 하강했다. 바위에 매달려 줄 하나로 하강하며 오랜 시간 내 마음 속에 웅크리며 자고 있던 바위의 울음소리를 나는 들었다. 내가 낸 길, 없는 길을 내어 가는 길, 길 내는 사람, 오 충분히 자랑스러워하라.

첫 루트 작업이 끝나자 해는 졌다. 맥주를 마시니 돌가루가 씻겨 내려간다. 오후에 길 내는 모습을 본, 티보, 스위스 국적의 불어를 쓰는 33살 청년이 숙소(후룽 지역에서 등반하는 사람들은 Mao’s House라는 현지 홈스테이에 모두 모여 점심을 제외한 모든 숙식을 같이한다. 이 또한 후룽의 근사한 문화다)로 돌아오는 우리를 크게 환영한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온 등반가들이 어디를 등반했는지 물어볼 때 나의 길을 올랐다고 답했다. 간지가 쩐다. 그들의 눈이 존경으로 바뀐다. 길을 개척하는 클라이머는 클라이머가 우러르는 클라이머다. 그들의 존경은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에 대한 선망이자 예의다. 그날, 우리가 낸 바위 길을 케이월K-Wall로 명명했다. 물론 K-Wall에 K는 Korean이다. 모두가 피곤해 일찍 잠들 때 나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고 주영 선배님과 나는 밤새 마주보며 앉아 얘기를 나눴다. 사는 얘기를 하다가 우리 산재이는 결국, 4mm 홀더 후크를 걸고 확보 봤던 얘기, 볼트 없는 길을 후크만으로 열 동작이나 전진했던 얘기, 후크를 쓰는 인간들은 갈 데까지 간 등반가라는 것 등 전설의 등반가를 앞에 두고 신과 같은 얘기를 나는 들었다. 자랑스러운 날의 밤은 이렇게 지나갔다. 나는 확신한다. 내 인생의 두 대학이 있었다면 여지없이 바위와 산이다. 

어제 우리가 개척한 바위를 류학열 선배님께서 올랐다. 뒤이어 함께 간 장필순님과 그의 아내 김현숙님이 올랐다. 근처의 또 다른 바위로 이동해 장필순님과 김현숙님의 바위 위에서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감상한다. 풀밭 위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으며 우리의 후룽 등반을 마무리한다. 어깨가 아프다. 한동안 못 쓸 테지만, 코리안 루트의 개척으로 오랫동안 아픈 어깨가 자랑스러울 것 같다. 


Special thanks to,

아름다운 후룽의 저녁, 집집마다 올라오는 밥짓는 연기와 천진하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보인 인류애에 감사한다. 일상에 돌아와 순식간에 적응을 마치고 눈을 감으니 후룽 시골길 푸짐한 소똥 가득한 길이 3d로 떠오른다.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후룽 마을과 오버랩 되며 아, 그곳이 천국이었나 싶은 것이다. 


길 내는 사람들의 세계로 인도하신 주영 선배님께 영광을. 


오토바이에서 두 번 날아올라 땅으로 떨어지는 낙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나를 믿고 내 뒷자리에 오른 류학열 선배님께 경의를. (선배님은 나보다 더 오토바이를 잘 타지만, 면허증도 없는 나에게 안겼다)


이제 바위 안타본 사람과는 겸상하지 않겠다는 장필순님께 산재이 세계로 들어섬을 환영하고, 부창부수를 마다하(‘지 않고’가 아니다)고 장필순님보다 월등한 등반 실력을 몸소 보이신 김현숙님께 존경을.


호치민 본부에서 원격으로 이동, 숙식, 스케쥴 등 후룽 현지의 모든 난관을 천리안으로 해결해 주신 최규철님께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몸으로 말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