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고 있어서 인지 지나쳤던 강들이 떠오른다.
빠리의 세느강은 기대와 달리 스케일이 너무 작았다고 할까.
버스를 타고 한강 다리를 자주 건너왔던 나로서는 강이라고 하면
서울의 한강 정도는 돼야 다들 '강'이라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그 아담한 폭의 강은 가뜩이나 빠리기운에 충만한 나를 도무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처음 강을 만난 날은 그렇게 좀 시시한 마음으로 돌아 갔던 것 같다.
그러다 빠리에 한 달을 머무르면서 수없이 강가 근처를 맴돌다 보니
세느강의 반짝임, 어둑해질 무렵의 강의 흑빛 , 그리고 익살스럽게 웃음 짓는 오래된 가로등,
강가 주변을 걷는 사람들, 그때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입김 호호 불며 오돌오돌 떨면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인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시간들 까지. 모두 사랑하게 되었다.
아담한 세느강과 반대로 리스본에서 보았던 강은 처음에 바다인 줄 알았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바다겠거니 하고 이틀 동안 아무 의심 없이 그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고 그곳을 떠나기 전날에야 그게 실은 강이었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저 강이 흘러 바다와 만난다고 하지만 나에게 수평선을 보여 줬던 그 강에게
괜히 배신당한 것 같아 마지막 날은 강을 바라보고 맥주 마시지 않았다.
리스본에서 스페인으로 되돌아 오는 버스 안에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휘몰아치는 눈 폭풍에 사고가 날까 덜덜 떠는 무거운 심정 앞에서
리스본의 따뜻한 강이 보고 싶어 전날의 괜한 심술을 후회했다.
캄보디아 프놈펜 메콩강은
우기 때는 진한 흙탕물이 찰랑찰랑 넘칠 만큼 올라와 있고
건기 때는 저 밑으로 물 수위가 낮아져 우기 때 찰랑거리는 물줄기를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사람들과 강가에 모였고
물과 바람과 마주하며 밤을 보냈다. 해가 바뀔수록 강가 풍경은 빠르게 변했다.
강 건너 깜깜하던 곳에서 작은 불빛이 하나 둘 보이더니 어느새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라오스에서 해지는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눈믈까지 그렁거리면서 바라보았던 강도
동남아의 물줄기 메콩강이었다.
한강은 오만가지 기억을 끄집어 내는데 허둥될 정도로 생활과 가깝게 밀접해 있다.
날씨만 좋으면 여기저기 다들 끼어나와 한강을 자기 집 안방처럼 둥지를 튼다.
깊은 강에서 갠지스 강을 묘사하는 여러 장면들은 아무리 상상해도 내가 보았던
그 어떤 강들과도 비슷 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달이 깊은 밤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뛰어 들고 싶었던 그 불안한 공포와 야릇한 감성들이
죽음을 포용하는 갠지스강과 어딘가 모르게 묘한 구석이 있다면 모를까.
강. 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