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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진 Nov 07. 2015

#사끄다에게

05 보고싶은 캄친구들

# 안녕. 사끄다.

반년만에 너의 사진을 보자마자  와락 안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두 팔이 너무 허전하더라.

이제 네가 몇 살이지? 다섯살즘 됐으려나. 아이들은 너무 금세 커버리고 너 같은 꼬꼬마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너무 헷갈려. 만날  때마다 몇 살이지?라고 물어봐도 귀찮다고 생각지 말아줘. 나도 눈치껏 물어볼게.


너의 환한 웃음과 풀밭에서 뛰노는 모습. 나도  올봄엔 그곳에서 너와 함께 푸릇한 풀밭에 서성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두꺼운 코트와 목도리를 두르고 작은 난로까지 켜놓고 있어. 아마 사끄다 너는 상상도 못하겠지.

발가벗은 너희 형제들의 갈색 피부가 너무 사랑스럽고 매끈하여 너희와 포옹하면 나에게도 그런 윤기 나는 기운들이 전해질까 너희와 살갗을 부비적 대고 싶었어.

엄마 껌딱지였던 네가 나에게 달려와 처음 안긴 날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해.  

따께오 한지붕 아래 지내면서 우리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어쩐지 이 관계는 너무 일방적이었어. 나만 널 좋아하고 넌 나에게 늘 새침하게 대했었지. 그래도 가끔 나랑 장난이라도 쳐주는 네가 좋았어.

그러다 우리가 두 달 만에 만났는데. 그날은 봉컨 기일이라 사람도 많고 나도 한국에서 온지 하루 밖에 안돼서 정신이 좀 없기도 했어. 그래서 멍하니 저 뒤편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네가 날 보고 활짝 웃으면서 오길래 내가 반갑게 안으려고 했더니 다시 뒷걸음질 치더라고. 그래 넌 그렇게 쉽게 안겨줄 아이가 아닌데 내가 너무 급했지 뭐.

그렇게 내 앞에서 몸을 베베 꼬고 얼굴엔 장난기 가득한 웃음만 머금은 채 어슬렁 어슬렁 뒷걸음질 치는 척 하다가  어느 순간 후다닥 달려와서 와락 안겼을 때. 그때도 눈물을 찔금 흘리며 너를 꼭 안았지만, 지금도 그 찰나를 떠올리면 목구멍이 뜨거워. 그때 난 봉컨 생각에 기분이 좀  서걱서걱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시끌시끌 복잡했었거든.  그때 네가 안아줘서 아 이제 내가 다시 캄보디아로 왔구나. 여기 내 집이구나 했어.

아- 참- 많이 보고 싶어. 사끄다.


나 어렸을 때 미국에 사는 이모가 있는 친구가 있었거든. 친한 친구는 아니고 그냥 같은 반 친구 정도. 그 친구 이모가 미국에 있다는 게 괜히 부러운 거야. 내 가까운 친척중에는 미국에 사는 사람이 없었어. 먼 친척 안 친한 친척 말고 가깝고 친한 친척. 아무튼 그래서 미국에서 뭐 사다 줬다며 그럴 때면 왜 나는 미국 사는 이모가 없나 말도 안 되는 부러움에 휩싸였던 거 같아.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 근데 내가 캄보디아에서 조카들이 하나 둘 생기고 그 조카들이 학교까지 가게 되니깐 그때 그 친구의 미국 이모가 생각나더라고. 내가 너희들한테는 한국 이모가 되는 거잖아. 우리가 가까이 살다가 지금은 떨어져서 지내지만 내가 너 이모는 이모니깐. 가끔 친구들이 뭐 자랑하고 그게 꼴배기 싫으면 한국에 이모 있다고 자랑해. 아마 한국에 이모 있는 애들은 거의 없을 거야. 이게 지금은 자랑거리가 되려는가 모르겠다. 그치.

난 그냥 네가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남들 보다 덜 가진 것에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따께오에 너랑 함께 풀밭에서 놀고 있는 소, 닭, 토끼 그리고 개와 고양이까지 있잖아. 따께오 너른 땅에서 흙냄새도 맡고 엄마 아빠 할머니랑 매 끼니 함께 먹고 마실 수 있잖아. 그것에 감사하라고 까진 얘기하진 않을게. 그건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나도 감사하고 있으니 말야. 사끄다 네가 어떻게 커서 어떤 어른이 될지 다들 너무 궁금하고 기대하고 있어. 따께오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청년으로 커주길. 요정도만 바랄게!

다음에 만날 때 꽉 안아주면 좋겠어! 사끄다.


따께오에서 사끄다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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