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1일(토)
최저온도 18°/ 최고온도 24°
강수량 56mm
태양이 가장 높게 뜨고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 새벽부터 장맛비가 쏟아졌다.
하루 종일 비바람이 몰아쳐 비가 들이쳤다가 다시 잔잔해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기대했던 하지가 아니라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내 실망과는 무관하게 밭에 잡초들은 신나 보여 얄미웠다. 전에 없이 밭에 작물들이 자라고 잡초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니 비가 고마우면서 야속하다.
밭에는 쌈채소, 대파, 쪽파, 양파, 감자, 호박, 수박, 토마토, 허브, 고추, 옥수수등을 심어도 이랑이
남았다. 해가 길어지고 봄비가 몇 번 오고 청명한 하늘을 여러 번 보고 났더니 풀들이 무성해졌다.
땅 위로 자라는 작물들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걸 눈으로 보면서 저마다 자라나는 속도를 지켜보는데
감자는 땅속에 묻혀 있으니 그 상태를 알 수 없어 좀 답답했다.
"감자는 하지에 캐지! 하지에 감자를 캐고 그 땅에 고구마를 심으면 돼"
동네 이웃분들과 감자 얘기를 하다가 '하지 감자'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시골에 와서 처음 듣는 이야기가 한두 개냐만은 내가 이렇게 농사나 절기에 대해 몰랐나 싶게 농부님들의 절기력에 대한 이해와 생활에 파고든 가치는 남달랐다.
감자는 기가 막히게 하지가 다가오니 줄기가 누워버리고 색깔도 누렇게 변했다. 이제 정말 감자를 캐야
할 때가 코앞으로 다가왔고 언제 캘지 날짜를 보고 있던 차에 며칠 비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주변 이웃들은 비가 오기 전에 감자를 캐셨다고 하니 초보자는 마음만 급해졌다.
하지에 장마 예보가 있어 그전에 감자를 얼른 캐야 하는데 하지를 넘겨버릴까 속이 타는 와중에 다행히
날이 개고 땅이 마르기 시작했다.
감자를 캐는 날 아침은 마음이 설레었다. 씨감자를 땅속에 쏙 넣던 때가 지난 3월이었는데 씨감자 1/4쪽을 넣으면 알알이 감자가 주렁주렁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함을 넘어서 실속 넘쳤다.
우리가 먹을 감자는 남겨두고 양가에 감자를 부치러 농협 택배 접수를 하러 가니 접수처 마당에 온갖
감자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내가 모르는 마을, 모르는 이웃들이 나처럼 하지 감자를 수확한 사실이 왠지 귀엽고 하지(夏至) 동료처럼 느껴졌다.
하루 종일 장맛비가 오는 저녁 감자를 듬뿍 넣은 토마토 수프를 만들었다. 맛의 주인공은 토마토였지만, 재료의 주인공은 포슬포슬한 감자로 완성된 '비 오는 하지'에 어울리는 수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