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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정은 Aug 21. 2020

오리지널의 오리지널의 오리지널

역사를 알수록 보이는 것들.


우리 아이들이 보는 사운드북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오는 책) 중에 한국 전통 동요 책이 있다. 수록된 곡들은 '나비야', '주먹 쥐고 손을 펴서', '리리리자로 끝나는 말은', '통통 영감님', 등이다. 이 중 다수를 별생각 없이 한국 동요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도쿄에 와서 그리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멜로디와 심지어 가사 내용까지 똑같은 곡들이 여럿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신기해서 검색을 해보니, 대부분 멜로디를 서양 민요나 찬송가 등에서 따와, 어느 일본인이 어린이 동요로 가사를 붙이고, 그 가사를 누군가 한국어로 번역해 붙인 식이었다.


이처럼, 전혀 관심 없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며 내가 그동안 '한국의 것'이라고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이 일본 또는 다른 나라의 것을 변형시키거나 거기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리지널이라 생각했던 것의 오리지널을 찾아보니 또 다른 오리지널이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어떤 곡들은 율동까지 똑같다



일본에 살며 또 놀란 것은, 우리가 일본한테 받은 문화적 영향 이전의 전통문화는 얼마나 중국과 흡사하냐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한국의 돌잔치 풍습이 없는 것이 신기해서 찾아보니, 한국의 돌잔치 풍습은 결국 옛 중국의 풍습이 한국으로 들어와 살짝 변형된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일제 시대 이전 동아시아의 종주국이 중국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역사의 흐름일 것이다. 마치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고유한 전통문화를 찾는답시고 일제의 잔재를 지우고 나면 나오는 것은 중국 문화의 잔재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원시부족처럼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는 이상 '누가 오리지널이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때가 많은 것 같다고 생각된다. 세계화로 모두가 연결된 세상이 되어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당연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세종대왕의 한글 같은 경우는 완벽에 가까운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처음에 써서 올렸으나, 어느 독자의 피드백으로 찾아본 결과 한글이 몽골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연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원조”라는 것을 정의 내리기는 참 힘든 것임을 다시금 느꼈다.


물론 한국 고유문화도 당연히 존재하고, 일본, 중국만의 고유문화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사이 정도 되는 교집합 --즉, 사람의 교류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생긴 겹치는 부분에 대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문화적인 요소들이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다른 문화의 것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영향을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역사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 아닐까? 무조건 일제의 잔재라 해서 감정적인 대처로 없애버리는 건 역사를 부정하는 일인 것이다. 제3의 관점으로 보는 유럽의 역사가 몇백-천년 이상 이어진 여러 영토전쟁과 민족의 섞임으로 인하여 누가 오리지널임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것처럼.




오지리널의 오리지널의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해서 절대 무능하거나 뒤떨어지는 건 아니다. 케이팝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케이팝의 어디가 우리의 전통 음악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케이팝은 누가 들어도 서양의 근대음악에서 영향을 받았기에 전통적인 한국의 음악 장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팝은 21세기 세계에서 새로 뜨는 음악의 한 장르로 인정되고 있으며, 그 영향 또한 엄청 대단하다.


이처럼 세계문화가 짬뽕으로 뒤섞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란 세상에서는, 아마도 어떤 식으로 브랜딩하고 마케팅하냐에 따라서 성패가 갈릴 것이다. 미래에는 이런 식으로 특정 문화를 재해석하여 자기 방식으로 표현한 문화가 살아남을 것이고, 뭐가 '원조'냐 '오리지널'이냐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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