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르메스 Apr 30. 2018

아마추어에겐 현대미술이 오히려 더 쉽다(1_17/17)

이우환의 작품 중에 네모 난 철판을 세우고 그 앞에 자연석을 둔 작품이 있는데 철판은 인위적이고 방정한 일본의 다회를 의미하고, 자연석은 한국의 찻사발을 뜻한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연석과 철판이 대비되어 서로를 부각시키듯이 한국의 찻사발도 일본의 다도가 없었으면 가치가 늦게 알려졌을 것이다. 


고대 중세르네상스 시대에 이렇듯 숭고미를 느낀 작품은 무수히 많으나 현대 작품 중 숭고미를 느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잭슨 폴록의 물감을 뿌린 작품은 분명히 감동을 주긴 하는데 그 감동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때 이것을 숭고미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숭고미란 아득히 높거나 깊어서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들거나 우러러 보일 때의 아름다움으로 잭슨 폴록의 그림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잭슨 폴록의 그림은 반복미와 의외성을 갖춘 것이지 숭고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현대 미술은 표현의 제약이 적으니까 새로운 표현으로 새로운 감동을 줄 때 이것을 말로 표현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모 평론가가 숭고미란 말을 사용하자 마치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억지로 납득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 미술 작품 중에는 명상적 분위기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고, 자연을 모방하거나 변주하여 감동을 주는 작품이 있고,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같은 작품의 상상력의 폭과 넓이에 감동하기도 하고, 순수하게 조형미와 색채감에 감동하기도 하고, 상징의 깊이와 호소력에 감동하기도 하고, 상상력의 규모와 정교함에 감동하기도 하고, 뭉크의 그림처럼 강한 정서적 충격에 감동하기도 하고, 진한 민속적 색채감에 감동하기도 한다. 

미술평론가라면 숭고미라는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말을 쓰지 말고 각각의 경우를 자세히 분석하여 작품보다 난해한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대중에게 쉽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릴 적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기를 읽었을 때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모나리자를 그렸을 때 배경을 무엇으로 하느냐를 두고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는 대목이 있다. 모나리자만 잘 그리면 됐지 배경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은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이다. 모나리자의 실제 배경이 흰 벽이든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음에 안 드는 배경이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 교외의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서야 만족했다고 하는데 배경을 꽉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강박관념 수준인 것 같다.

이것은 신의 뜻이 안 미치는 데가 없는 세계관의 헤브라이즘과 신들이 역할 분담을 해서 일을 처리하고 요정이 가득한 세계관의 헬레니즘이 만나 이런 경향이 더 강화된 것 같다.


화면을 가득 채우려는 욕구와 이성과 논리를 중요시 하는 철학이 합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경향이 일반화 되었다. 

그림에서는 풍경화와 건축물 그림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따르는 원근법이 나타났고 리얼리즘으로 모든 그림을 그렸다. 채소와 과일로 사람 얼굴을 표현한 환상적 그림도 있지만 채소와 과일은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조각에서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 위하여 동상이나 환조를 만들었다.


한국에는 부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석질이 단단한 화강암과 편마암이 주로 분포하여 조각하기 힘든 탓도 있지만 굳이 뻔한 뒷모습이 궁금하지 않은 민족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서양 사람은 대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정면을 그리면 측면과 뒷모습이 궁금한 것이다.

브라크의 그림 중 사람의 얼굴을 큐빅 형태로 분해한 그림이 있는데 코와 귀는 그 모습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본 모습을 그렸다.  

피카소는 ‘우는 여인’을 그릴 때 피카소의 아내가 피카소 자신이 바람피우는 것을 보고 항의하며 분에 못 이겨 우는 모습을 그렸는데, 눈은 부릅뜬 모습으로 그리고 입은 이를 드러내고 공격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입 옆의 번개 같은 모양은 천둥 치듯 격렬하게 소리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 같고 손가락 같이 보이는 것은 혹시 피카소에게 버림 받을까봐 급하게 입을 막는 동작이 아닐까? 머리의 장식은 정면에서 본 모습을 시점을 이동해 가면서 평면적으로 그리고, 두 눈은 45도 좌우로 본 모습을 그리고, 코처럼 보이는 것과 귀밑머리는 측면에서 본 모습을 그리고 입은 이의 크기로 보아 정면에서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본 모습을 그리고 얼굴의 윤곽은 정면에서 본 모습을 그렸다. 대상의 모든 것을 파악하려는 서양인들에게 다양한 각도에서 본 모습을 조형미와 표현력을 갖추고 호소력까지 있는 피카소의 그림이 얼마나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주었을 것이라는 건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에 대한 메타비평* 또는 오마주의 예를 들면 ‘우는 여인’에 대한 메타비평으로 여배우를 섭외하여 분노하고 우는 연기를 하게 한 후 이것을 360° 사방으로 촬영하여 그 사진을 꼴라쥬 기법으로 최대한 ‘우는 여인’과 비슷하게 만든 작품을 메타 비평으로 제시하고 싶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 얼마나 조형미와 표현력과 호소력이 뛰어난 지를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메타비평이 아니라 오마주라고 할 것이다.


*메타비평

 : 소설에 대한 비평을 다른 소설을 짓거나 시에 대한 비평을 다른 시를 짓거나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서화에 감상 낙관을 찍는 것도 훌륭한 메타비평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마추어에겐 현대미술이 오히려 더 쉽다(1_16/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