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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메스 Apr 30. 2018

아마추어에겐 현대미술이 오히려 더 쉽다(1_16/17)

일본 다도와 막사발

*이하 미리 작성되어 있는 글은 먼저 올려두고 추후에 사진 자료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국보 취급을 받는 막사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기자에몬 같은 그릇은 극치의 자연미로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동작 하나하나, 쓰는 말까지 규제되어 있어 극도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본의 다도에서 유일하게 긴장을 해소하는 것이 한국에서 건너간 찻사발이다. 

처음 일본 다도 시연에 참여했을 때 긴장감에 적응이 안 되어 까불었던 기억이 후회된다. 

찻 사발이 막사발이었다는 설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근거가 찻 사발의 높은 굽 때문이다. 

막사발이라면 놋그릇을 흉내 내어 낮은 굽이었을 텐데 부처님에게 올리는 공양 그릇이었기에 굽을 높게 했을 거라는 짐작이다. 가난한 절에서 스님들이 생계를 위해서 그릇을 구워 팔았는데 이 때문에 그릇에 자연미와 선미가 깃들게 된 것이다.


한국의 그릇에는 천연덕스러운 자연미와 평화로운 기운이 감도는데 반해 일본의 그릇에는 잘 만들어야겠다는 긴장감이 감돈다. 이것은 사무라이와 칼 문화 이래 일본인의 기질로 고착된 것 같다. 이 기질은 생활 태도와 문학에도 반영되는데 일본의 학부모는 수험생에게 긴장하라고 말한다. 한국의 학부모는 수험생에게 마음 푹 놓으라고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의 시에서 극도로 압축된 이행시 양식인 하이쿠가 인기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바쇼의 하이쿠 중에서 한 예를 들면 오래 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소리가 전문이다. 이끼 낀 바위와 수초가 무성한 오래 된 연못의 풍경을 개구리가 뛰어드는 소리가 나는 찰나로 압축한 것이다. 

일본의 다도도 꼭 필요한 동작만으로 압축하고 압축된 만큼 긴장감이 더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인 센노 리큐가 일본 다도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데 센노 리큐 시절에 손님을 정성스럽게 대접하는 마음만 있으며 형식은 별로 문제가 안 되었는데 후대로 갈수록 일본의 가면극인 ‘노’ 또는 ‘가부키’처럼 절제된 동작의 형식미를 중시하게 되었다. 

일본의 다회는 꼭 필요한 동작과 말만 간추려서 관객 참여형으로 긴장 된 분위기에서 다회를 시행하며 일종의 연극이라 볼 수 있다. 센노 리큐 자신도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처럼 다회의 유일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긴장감 속에서 이 같은 다회는 평생 한 번 뿐이라는 것을 상기 시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회의 전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명상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본다. 


그의 유일성에 대한 집착은 유난한데 멀쩡한 찻잔을 부수고 파편을 붙여 유일한 찻잔을 만드는가 하면 다실 앞에 흐드러지게 핀 나팔꽃을 모두 따내고 한 송이만 남겨 그 나팔꽃에 집중하게 하였다. 화경청적(화합하고 서로 존경하고 청결하게 하고 침묵을 유지하라)의 정신을 강조한 것도 명상하게 만드는 시도일 것이다. 

나팔꽃을 다시 앞에 심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요즘은 품종개량 되어 아침에 핀 꽃이 오후까지 유지되지만 재래종 나팔꽃은 새벽에 피고 해 뜨면 지므로 새벽의 쇄락한 기분으로 나팔꽃을 관찰하고 더불어 인생의 무상함도 느껴보고 나팔꽃이 독촉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꽃을 관찰하라는 뜻일 것이다. 


다회 전에 가볍고 시각적 요소를 중시한 회석요리(카이세키료리를 먹고 난 후 접시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카이세키료리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를 대접한 후 양갱 같이 말차와 어울리는 깔끔한 다과를 준비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 송이 꽃을 꽂은 화병을 설치한 후 찻자리에 어울리는 그림을 거는데 현대 화가의 작품으로 가장 어울리는 것이 이우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조응 시리즈는 하얀 바탕에 몇 개의 간결한 붓자국을 찍은 것으로 최적의 위치를 찾는 긴장감이 일본식 다회와 어울린다. 그의 ‘선으로부터’ 시리즈는 수직으로 그은 붓 자국이 마치 사무라이 칼의 일도양단의 기세 같아서 다회와 어울린다.  

그의 ‘점으로부터’ 시리즈는 얼핏 보면 안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나 진한 점이 양자역학적인 도약으로 점점 희미해지는 과정은 진한 기억의 파편이 점점 희미해지는 과정을 닮아 기억하는 역사의 무상함과 인생의 일회성을 상징하므로 은근히 다회와 어울린다. 


이러한 긴장된 다회에 천연덕스러운 자연미로 긴장을 풀어주고 자연스럽게 명상을 유도하는 한국의 찻 사발이 얼마나 귀한 존재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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