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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26. 2021

자전거를 타며 만난 사람들

청민 x Thousand Korea │ 자전거 에세이 #6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자전거를 탔다. 두어 바퀴 열심히 달리곤 계단에 걸터앉아 노을을 보고 있는데, 자전거 한 대가 내 주변을 서성였다. 괜히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눈이 마주쳐버렸다.

 
오래된 자전거에 붉은 깃발을 단 할아버지는 다름 아닌 호수공원 관리자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관리 할아버지는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이 자전거는 이름이 뭔가요? 어떻게 접는 건가요? 여행 다닐 때 좋은가요?

 
사실 관리 할아버지는 공원에서 내 접이식 자전거와 같은 자전거를 자주 봤다고 했다. 볼 때마다 어디 자전거인지 또 어떻게 접고 펴는 건지 이것저것 궁금했는데, 방해가 될까 묻지 못했다고. 아, 자전거를 좋아하는 분이셨다니.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경계심이 사르르 녹아선, 할아버지의 밀린 질문들에 하나하나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 자전거는 다른 자전거보다 훨씬 작게 접혀요. 그래서 여행 다닐 때 특히 좋더라고요. 더 나아가선 직접 접고 펴는 걸 보여드리곤, 또 끌어보셔도 좋다며 넙죽 손잡이를 넘기기도 했다.

 
조심스레 자전거를 끌어보고 만져보던 관리 할아버지 자전거로 여행하는 게 오랜 꿈이라는 숨겨둔 이야기도 툭 꺼내셨다. 이곳을 넘어 이곳저곳 떠나보고 싶다고. 그리곤 내게 망설이지 말고 마음껏 떠나라는 말을 남기시곤, 다시 자신의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호수 반대편으로 발길을 옮겼다.


 



ⓒThousand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이렇게 우연의 대화를 자주 마주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칠 사람들인데,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계 없이 서로 속에 숨겨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강서 우연히 만난 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어렸을 때 아버지께 자전거를 배운 것’이라고 하셨고, 노들섬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는 ‘건강하고 튼튼할 때, 나보다 더 멀리 가보라’는 응원을 보내셨다. 길에서 만난 말들 속에는 자전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자전거를 타보지 않았다면, 또 오래 자전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절대 건넬 수 없는 응원 같아서 이렇게 우연한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이상하게 몽글몽글해졌다.

 
돌아보면 내 곁에는 항상 자전거가 있었다. 할 것 없어 심심할 때도, 눈물을 참고 싶을 때도,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도. 자전거를 한 바퀴 타고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렴풋이 삶의 다음 방향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어렸을 적 친척 언니가 물려준 세발자전거부터, 보조바퀴를 단 네발자전거 그리고 두발자전거까지. 언제부터 자전거가 내 삶에 있었는지 기억하진 못하지만, 기억의 저편에는 늘 자전거가 있었고, 나는 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었다.


길에서 만난 그들도 나와 비슷한 길을 걷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언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바퀴 위에서 오래 즐거움을 쌓은 사람들.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내게 자꾸 눈이 가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버지를 따라 우연히 자전거 타는 걸 배우고, 청년이 되어 힘껏 페달을 밟아본 기억들. 이 모든 시간을 지나 보았기에, 자전거를 타며 쌓은 깊은 행복을 알기 때문에,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더 먼 곳으로 가서 마음껏 행복하라고 선뜻 말을 해줄 수 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알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우연한 대화를 할 때마다, 나는 자전거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가 같은 시간에, 같은 길에 서 있는 것 같았다.





ⓒThousand

 
주말만 되면 동네 호수 공원엔 아이들이 자전거를 이끌고 나온다. 가만히 앉아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미소가 띤다. ‘너는 언제 키가 커서 네발자전거를 탈래?’ 약 올리던 언니의 말에, 세발자전거를 타던 동생의 삐죽거리는 표정이 귀엽기만 하다. 헬멧 사이로 삐질삐질 땀이 삐져나오는 걸 닦으면서, 페달을 밟는 것을 멈추지 않는 그들을 보며 내게 말을 걸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네발자전거를 타던 언니가 나무를 꽈당 박았다. 놀란 나는 달려가 괜찮으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씩씩하게도 괜찮다면서 다시 페달을 쌩쌩 밟았다. 이 친구는 벌써 알게 된 걸까? 마음껏 달리는 마음, 바퀴 위에서 차곡차곡 쌓은 자신만의 기쁨을. 그들을 보며 우리는 자전거 안에서 모두 하나의 길에 서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오래도록 안전하고 튼튼하게 더 먼 곳으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네발자전거와 세발자전거를 나란히 타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친구는 벌써 알게 된 걸까?
마음껏 달리는 마음,
바퀴 위에서 차곡차곡 쌓은 자신만의 기쁨을.



글쓴이 │ 청민(淸旻)

romanticgrey@gmail.com

@w. chungmin : 오늘 여행자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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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콘텐츠는 Thousand Korea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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