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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Nov 15. 2021

무해할 수 없다면, 조금은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

청민 x Thousand Korea │ 자전거 에세이 #5

코시국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 건, 다름 아닌 배달용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재택근무에 삶의 패턴이 모두 달라졌다. 사무실에 나갈 때는 맛집 탐험을 하며 뚝딱 차려진 음식을 먹었는데, 집에선 스스로 끼니를 챙겨야 했다. 내가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밥도, 커피도 마실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요리도 하고 밑반찬을 만드는 게 재밌었지만, 끝없이 길어지는 재택근무에 금방 흥미를 잃었다. 아니, 먹고사는 게 이렇게 고된 일이었나. 챙겨줄 사람 없는 집에서 나는 더 성실해야 했지만, 일이 바빠질수록,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배달 음식을 먹은 날엔 작은 공허함이 찾아왔다. 편리함을 선택하는 대신 소중한 무언가를 야금야금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특히 배달 음식을 먹고 난 후에 나오는 쓰레기가 너무 많았다. 심한 곳은 플라스틱 용기가 크고 작은 게 10개도 더 나왔다. 들어있는 음식에 비해 배출되는 쓰레기가 더 큰 상황. 한 번은 일주일 동안 분리수거를 못 했더니, 현관에 용기가 수북이 쌓였다. 바닥에 줄지어 보니, 세상에! 내 키보다 클 것 같았다.

 
현관에 쌓인 플라스틱 용기를 보면서 그제야 코시국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환경 문제가 내 것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플라스틱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뉴스를 보며, 저것들이 돌고 돌아 언젠가 우리 집까지 쌓일 것 같다는 두려움이 (부끄럽게도) 처음으로 들었다. 더불어 계절에 맞지 않는 더위와 추위를 겪으며, 정말이지 지구가 아프다는 게 실감이 났다.


 


ⓒsatria hutama


한 번에 변할 수 없으니, 조금씩 변해보자 싶었다. 솔직히 친환경적인 생활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 것이 많아 완벽하게 해낼 자신은 없었지만, 무해할 수 없다면 그래도 조금은 세상에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름이 아니라 호수 공원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탁 트인 하늘이 가진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은 평범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구가 아프면 지금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젠가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작지만 해낼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해보기로 결심했다.


가장 쉽게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를 챙겨 다녔다. 하지만 매번 텀블러를 빼놓고 나가기 일쑤였고, 그럴 때는 종이 슬리브와 빨대라도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시간이 여유로운 주말에는 귀찮아도 자전거를 타고 나가, 다회용기에 점심을 포장했다. 단골 떡볶이집에선 몇 번 다회용기로 포장을 하니, 사장님께서 나를 기억하셨다. 헬멧 쓰고 자전거 타고 와선 다회용기에 포장해가는 애로. 그리곤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는데, 부끄러우면서도 그 말이 ‘잘하고 있다’는 말로 들려 수줍은 웃음이 났다.

 
좋아하는 자전거 타기는 조금 더 확장시켰다. 평소에도 취미로 자주 자전거를 탔지만, 장을 보거나 먼 곳에서 친구를 만날 때도 자전거를 적극 활용했다. 처음엔 자전거와 헬멧이 짐이 될까 걱정이었는데, 헬멧에 달린 팝락(Pop-Lock)을 활용해 자전거와 열쇠로 연결해두니 손까지 가벼워져 괜찮았다. 이런 작은 귀찮음을 지나니 장점이 더 많았다. 자전거를 적극적으로 타면 꽉 막힌 도로에서 지치지 않게 자유로울 수 있고, 계절도 흠뻑 즐길 수도 있으니까. 자전거는 걸어 다니는 것처럼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절로 환경 보호에 참여하는 셈이 되어 뿌듯함은 덤으로 따라왔다.

 
회사엔 매일 왕복 40km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선배가 있는데, 곧 선배를 따라 나도 자전거 출퇴근에 도전해보려 한다. 마침 내가 사는 고양시에선 11월 약 한 달 동안 탄소 중립 '자전거 출퇴근 챌린지'를 여는데, 온실가스를 줄이고 탄소 중립 실천을 위해서 시작한다고. 솔직히 선배처럼 매일은 못하겠지만 금요일 퇴근은 해볼 수 있겠다 싶어,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시작해볼까 생각 중이다.





ⓒAsher Ward


마음의 결을 한 번 이쪽으로 돌리니, 작은 물건을 사도 브랜드가 가진 가치를 살피게 된다.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해 어떤 방향을 가졌는지, 무해하진 못해도 조금 덜 해로운 방향을 선택하는지 살펴보는 게 소비를 하는 데 하나의 목록이 되었달까. 따우전드 헬멧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닿아 있다. 아름다운 오늘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 수익 일부를 떼어 지속 가능한 내일을 이야기하는 마음. 사실 헬멧 디자인이 예뻐서 알게 된 브랜드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더 좋아지게 되었달까.

 
무해할 수 없다면 조금은 세상에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환경 실천보다 어딘가 조금 부족하고 적극적이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변화에 작은 보탬이 된다면 좋겠다. 변화란 언제나 작은 걸음에서, 오늘 내게 주어진 선택에서부터 시작되니까.

 
오늘 본 하늘을 내년에도, 아주 먼 미래에도 오래오래 보고 싶어서. 푸른 내일을 위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오늘 하루도 선한 즐거움을 안고 살아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와 함께라면, 더 즐거운 여정이 될 수 있겠다.




무해할 수 없다면,
조금은 세상에 덜 해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글쓴이 │ 청민(淸旻)


romanticgrey@gmail.com

@w. chungmin : 오늘 여행자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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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콘텐츠는 Thousand Korea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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