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Aug 01. 2022

책을 꼭 완독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노잼'이라면


이사 오면서 대부분의 책을 정리했다. 고작 원룸에서 200권 넘는 책이 나왔다. 긴 고민 끝에 하나 있던 큰 책장도 버렸다. 서랍마다 숨어있는 책을 다 꺼내선 꼭 간직하고 싶은 책 50권만 남겼다. 나머지는 친구에게 나눠주거나 당근을 하거나 아쉬움 없이 중고 서점에 팔았다. 그리고 책을 팔아버린 돈으론 이사 비용을 보탰다.


한때 책이란 절대적인 물건이라 여긴 적이 있다. 그러니까 책은 자고로 한 번 품에 들어오면 끝까지 품어야 하고, 한 번 펼치면 완독해야 한다고 말이다. 고고하고 고상한 것. 지금 생각하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느끼는 죄책감이 얼마나 별거 아닌지 모르겠다만 예전에 나는 그랬다. 책은 조금 더 멋진 것, 꼭 읽어야 있어 보이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잘 읽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도무지 읽기 싫으니 이삿짐을 싸며 항상 폭탄을 맞는 것이다.


요즘은 어떤 책이든 완독하지 않는다. 읽다가 영 집중이 되지 않거나, 기대했던 내용과 다르거나, 노잼일 때는 과감하게 페이지를 덮어버리고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다시 펼친 책이 또 노잼이면 다시 덮고선 책장 틈에 끼워두고 제목이 힙해 보이는 새로운 책을 꺼낸다. 그러니 내 의자 옆에는 항상 책 탑이 쌓여 있다. 완독하지 않아도 되니 한 번에 한 권의 책을 완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책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건 출판사에서 일하며 다 버렸다. 출간 전 검토해야 하는 원고만 해도 한가득이니 퇴근 후엔 텍스트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물론 나와는 반대로 퇴근 후 자기만의 독서 시간을 더 채우는 분도 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읽기 싫은 발버둥이 더해지니 어느 순간 책을 펼치지도 않는 나를 발견했다. 나름 책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일주일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니. 책과 멀어지고 있던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그런데 책은 꼭 완독하지 않아도 되잖아? 내가 재밌는 게 중요한 거지.’


아!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선배의 말이 맞다. 내게 재밌는 게 중요한 거다.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맞지 않는 책과 씨름하며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덮어버리는 책 자체의 가치가 별로라거나, 한 번 덮었다고 다신 펼치지 않는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음 고생하며 배우는 인간관계처럼 책과의 관계도 타이밍이 맞지 않을 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지금은 노잼이라며 덮어버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찾게 되는 책도 있으니까. 사람도 책도 취향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책은 꼭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다. 내게 맞지 않으면 쿨하게 넘어가고 다시 펼친 책도 노잼이면 밀린 드라마를 보거나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의 영상을 정주행하면 된다. 그러다 그 사이클이 다시 지루해지면 책장 속 재밌어 보이는 책을 여는 것이다. 오래전엔 그냥 덮어버린 책이라도 다시 펼쳤을 때 새롭게 느껴진다면 자연스레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꾸준히 좋아하기 위해서는 흥미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러니 무엇이든 재밌는 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즐거워야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이래도 저래도 여전히 읽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책 읽는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 자란 덕이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단 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 탓이 가장 클 테다. 좋아하니까, 꾸준히 좋아하고 있으니까 묘한 죄책감도, 즐거움도 찾을 수 있는 걸 테니까.


* 그래서 지금 동시에 읽고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동쪽 빙하의 부엉이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 여성들, 바우하우스로부터

-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너무 좋다아)

- 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결국 책에 대해서 ‘끝까지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미안해할 것도 아니고 부끄러울 일도 아닙니다.  읽지 못한 책을 책장에 꽂아둔다고 큰일 나지도 않고요.
버리시거나 헌책방, 중고서점에 팔거나  책을 좋아할  같은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겠지요. 그저  읽힌다면, 흥미가 없다면  책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굳이 완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중에서


* 나와 완전 똑같은 마음을 가진 이동진 저자의 문장을 공유한다.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


(- 2022. 06. 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