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 살아가는 동력의 원천에 대하여

by 한결
<폭싹 속았수다>가 보내는 메세지는 이랬다. ‘인생의 행복을 어떤 손에 잡을 수 있는 유형의 것으로 말할 수 없다. 인생의 아름다움도 고정되어 있는 생명없는 유형의 것이 아니라. 인생이 아름다움은 그저 살아냄 자체에 있어, ‘삶’이 '아름다움'이라는 열매를 내고, 그것을 수확하며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야.‘


전쟁 이후 생존한 이들의 삶은 무겁고 거칠었다. 비관적으로만 봐도 부족할 듯했지만, 그 시대에도 낭만과 열정과 꿈이 있었다. 어두움 속에서도 속삭임이 오가고, 당혹스러운 입맞춤이 있었으며, 자신의 아주 작은 욕구를 들어주라며 떼쓸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꿈꿀 수 있는 젊음이 존재했다. 아주 사소하고 여린 마음 쓰는 것들이 모여서 사랑을 쌓아가고, 삶을 쌓아가고, 그들의 서사를 쌓아갔다.


제주도, 섬마을. 바다가 가로막고 꿈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곳. 제주도에서 해녀로 태어날 거면 차라리 소로 태어나는 게 낫다는 그녀들의 푸념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인물은 많지만 결국 내게는 두부류의 인물들로 나뉘었다. 죽지는 못하겠어서 삶을 소비하듯 사는 사람들, 그리고 죽어도 여한이 없게 삶을 일궈내느라 자신의 꿈에 몰두하는 이들. 후자에게 꿈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성공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가장 질기게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치닫는 것 같지만) 반드시 성공을 해야만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목적은 원동력이 된다. 역경을 견디고 흔들림을 바로잡는다. 무엇이 이들을 살아가게, 아니 아름답게 했을까?


순정. 순수하고 끈끈하게 자신을 지탱하고 타인을 안고 잡아주는 힘.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연민보다는 더 뜨거운 것, 순정. 그 순정의 대상은 꽤 다양했다. 좁은 의미로는 한 사람에 대한 순정이었겠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순정,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순정이었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겠다는, 기필코 하나의 ‘작품’으로 대하겠다는 것의 의지가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어 그 여정을 함께 한 이들에게 바치는 순정.


한국전쟁 직후, 생존에만 집중하던 50년대,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거듭나려고 안간힘을 쓰던 60년대에서 시작해서 90년대를 지나 현재를 살아가는 다음 세대까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힘.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웃들 사이에도, 그리고 남녀사이에도 - 순정이라는 가치를 지키며, 사랑하는 이의 손에 뭐 하나라도 더 쥐어주려는 뜨거운 마음. 그렇게 계속해서 서로의 따뜻함과 배려 안에 이뤄내는 성공이라는 것. 요즘은 이런 것도 '부담'이라고 말하는 시대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서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도 싶었다. 하지만 결국 지금의 시대가 바라는 이상향도 역시 순정이 아닐까 한다. 그 순정에 대한 용기가 없어서 부담스럽다며 사고하기를 포기하고 열등감과 비교의식 속에서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것이 너무나 쉽게 납득이 되는 시대인데, 그러한 시대상을 대놓고 애순이 답게, 광식이답게 당당하고 우직하게 마주한다. 시를 종이 위에 쓸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 버리는 그들답게.


어떤 이는 순정을 잃었고 어떤 이는 그걸로 버티면서 살아내다 그 순정해서 뭣하냐는 사람들의 마음에 씨앗을 뿌리고, 흙을 무던히 밟아주고, 단비를 내리며, 추운 겨울도 굳이 버티어내면서, 새싹을 내고, 열매를 얻었다. 아무것도 줄게 없어서 거친 손과 표정의 괴팍한 엄마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안쓰러움에 쉬이 가지 못하고 모든 것을 주는 엄마라는 '이상적 형체'가 되고, 아무것도 모르고 주변머리 없어 뵈는 무쇠가 '명마'가 되고, 억울함에 갇혀있던 얌체 문학소녀가 행복에 대한 질문 가득한 삶에서 그 삶의 염치와 깊이를 아는 '아줌마'가 되고, 자신에게 ‘하사’된 사랑을 책임의식에 의한 짐으로만 여기며 제 잘난 마음을 죄책감으로만 비치던 딸이 자신에게 온 모든 행운이 그런 삶 덕분이었다고 고백하는 '엄마'가 되었다 - 마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밭에 묻혔다는 금은보화를 찾으려다 보니 어느새 경작을 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통해 ‘삶’과 그에 따른 영화를 갖게 되었듯이. 당시에는 멀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형체를 알 수 없어서 그저 흠모하기만 하던 그 행복이, 언제나 그곳에 바람처럼, 바다처럼, 돌담의 돌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곁 사이사이에서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직 순정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행복. 가족과 이웃이라는 단위로, 사계절의 풍파를 견디고 돌고 도는 우리 인생의 높음과 낮음, 그리고 죽음과 생명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것.


인생에서 가장 질긴 사람들은 화려하고 미리 닦아놓은 잘 정돈된 꽃밭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허허벌판에 주어지는 시절을 좇아서 빈틈없이 빽빽하게 피어나는 유채꽃과 잡초들과 같은 사람들인가보다. 그들의 삶은 있는 힘껏 살아내느라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들의 아름다운 형체를 바라볼 수 없을지 몰라도, 다른 피사체가 없이 그저 그 수도 없이 많은 숫자가 꽉 채워나간 들판만으로 작품이 되는 삶이다. 그 삶을 통해 다음 세대와 그 이웃이 분명하게 목도한 아름다움이 그들에게 자양분이 되어 또 그렇게 아름다움을 바라며 살아가게 한다. ‘순정’이라는 아름다움을 향한 바라봄과 소망함이 이들이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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