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울어야 하는 이유
말이 너무 많아.
끊임이 없어.
자주 듣던 소리다.
말이 많다는 것은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실제로 말이 실체를 가지고 머릿속, 가슴속, 목구멍에서 돌아다닌 것 같을 만큼 차고 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덜어내지 않으면 내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꺼내놓고 버릴 말은 버리고 다시 차곡차곡 정리하지 않으면 속된 말로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말을 꺼내지 않으면 다른 형태로 그 말이 나오곤 하는데 그것은 눈물이다. 억지로 이겨내 보려 하는 웃음 뒤에도 슬픔이 가려지지 않아 눈물이 흐르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내 안에 담긴 말이 얽히고설켜서 그 형태로 녹아 나오는 것 같다. 머리가 아프고 꽉 막힌 것 같으면 가끔 내보내야 한다. 그러면 머리보다는 목구멍과 가슴의 답답하게 막혀있던 것이 뚫리면서 머리까지 맑아지고 더욱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어릴 때 우리 엄마는 나를 울보라고 많이 혼냈다. 인생 살면서 제일 억울하고 서글펐던 기억 중 하나는 우는 걸 울지 말라고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던 판단들이었다. 이건 나에게 일종의 신체적 신호라서 생존하고자 내린 최후의 수단인데 단지 징징대고 우기기 위한 도구로 악용한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왜 나는 우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시선을 두려워해야 하나 싶었고 이렇게 생겨먹은 내가 밉고 비참했다. 기침과 웃음이 참기 힘든 것처럼 내겐 울음이, 눈물을 내보냄이 그랬다. 말을 하기엔 내 느낌을 표현할 단어가 부족하거나 어휘력이 부족하고 자칫 소통을 시도하다 오히려 역으로 오해만 살 수 있어서 무책임하게 말을 꺼내기보다는 울음을 택했던 것인데. 그리고 신체적으로 심호흡을 하듯이 자신을 컨트롤하기 위한 방법인데. 그것이 상대에게 나를 위로하라는 압박의 메시지이지만은 아닌데도 우는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은 대게 굉장히 그 상황을 직면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들켰다가는 다시는 함께하기 불편한 사람으로 또는 유리 멘탈이라고 놀림감으로 낙인찍히거나 하는 것이 속상해, 말이나 눈물만이 아니라 글의 형태로 내보내기로 했다. 역시 글은 인스턴트 한 면이 덜하고 또 기록의 형태로 남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볼 때 소리를 녹음하는 것보다는 도 경제적이기도 하고 덜 유난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내 목소리를 기기를 통해 듣는 게 너무나 어색하다.)
글의 형태로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내가 글 쓰는 재주가 좋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혼자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괴상한, 정신이상이 있는 행위로 보곤 한다. 말이란 원체 상대에게 즉각적으로 들리도록 하는 행위이기에 혼잣말이 길어지는 것이 수용되진 않는다. 눈물은 언급한 대로 사회 내 부담감과 공포 (또는 슬픔과 우울감에 대한 공포?), 불편함을 생성하기에 이것도 환경적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글은 오히려 홀로 하던 상대에게 편지로 부치던, 상관없이 수용되는 언어적 도구다. 기록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왜 글을 쓰기로 했는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는지 등이 설명된다. 그런데 난 사실 아직도 왜 내가 글을 써서 포스팅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난 일기를 쓰는 습관이나 그 아이디어 자체를 참 좋아하는데 내 일기는 논리 정연하거나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있지 않는, 아예 처음과 끝이 없는 그냥 생각의 조각일 때가 많다. 혹은 생활기록 정도 수준이거나, 매일 성실하게 쓰는 것도 아니며 (원래 안 성실하다) 악필이고 (변명이긴 하지만 생각이 손 놀리는 속도보다 너무나 빠르다. 변명 맞다. 사실 성격이 급하고 지랄 맞은 면이 있어서겠다) 사실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 때가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개를 할 마음으로 작정하고 쓰는 글에는 생각이 그나마 정리가 되고 어떤 호흡과 리듬감으로 색감과 텍스쳐를 나타내고 싶은지가 곧잘 결정되는 편이다. 그래서 한번 쓰기 시작하면 포스팅치고는 장문의 장황한 글이 나와버려서 진지충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동시에 누군가의 손가락질과 비판 또는 조소가 두려워 난 늘 소심한 구석에서 벽에다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막상 공개를 하고 나면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의 자유를 나 스스로가 검열하여 내치고 다듬어서 가장 보기 좋은 것으로 내놓으지 않으면 무시당하거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한다. 다시 사회적 시선에 갇혀서 말, 눈물을 지나 글까지도 쓸 수 없는 도구로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나는 쓰기로 했다. 가장 좋은 모습의 나를 보여주자가 아니라 그냥 나를 보여주는 것이 익숙할 수 있도록.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 스스로가 나를 놓아주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나의 겉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며 나의 말들만으로 가득할 수 있는 공간에서 스스로가 나를 떠올리지 않으면서도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나, 이러한 존재도 존재함을 외부에 남겨도 된다는 자유를 누리며- 울어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 터져버리기 전에 내 안의 살아나는 말들을 꺼내서 그것의 존재가 의미를 가지고, 자유를 가질 수 있게 놓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