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잊어야 할 것이 아니라서.

나 자신을 직시하고 용서하고 수용하기 위한 길이라면 -

by 한결

과거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사람마다 다양한 태도를 취하고 또 여러 방법이 있는데, 나는 거북이, 오뚜기같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타입 같다.


끝까지 내 기준에 만족함이 있을 때 까지 그 끈을 놓지 않고 느리게, 남이 신경 안쓰는 부분에 오히려 신경을 써가면서 거북이처럼 가거나 혹은 쓰러졌다 생각하고 잊을만하면 다시 올라오는 오뚜기처럼. 물론 타인이 보는 관점에서의 '경주'의 시작과 테이프를 끊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경주의 길이와는 다르기에 어디부터가 그리고 어디까지가 '재도전'인지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나만 알 뿐이다. 내 삶에 무너진 영역에 대해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다시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치유하고 그도 안고 가고자 그 영역을 잊어버리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도리어, 꼭 다시 돌아올께. 기다려, 난 반드시 돌아올꺼야- 하며 당시의 나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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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와 보람, 그리고 낙이라는 것이 있고 타인이 생각하는 그것이 있다. 그것을 기준삼아 나는 나의 경주를 하는것이 옳다고 늘 생각해 왔었지만 지난 몇년간은 정말 밑바닥의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온 것 같다. (스스로를 잃어버린 마음. 이 전까지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수렁에 빠졌을지 모르지만 내 자신까지 잃어본 적은 없었는데 저 해저 깊은 곳에서 영문도 모른채 나를 잃어버리고 어디서 어떻게 구해야할 지 모르겠는 그 마음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절망이지만, 그 안에서 은혜도 배로 경험했던 것 같다. 언어를 잃었던 것 같으나 사실은 더 얻기 위함이었듯이. 사랑은 잃은 것 같았으나 더 진짜 사랑을 발견해 냈듯이. 내재적 치유는 참 놀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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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그저 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유형이 있다. 과거의 자신의 경험과 남이 겪어본 통계에만 맞춰 자신의 패를 돌리는 사람도 있고. 그것은 그들의 방식이다. 그 방식은 나름의 유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방식이, 나의 삶을 이끌어신 그의 방식이 있다. 결과가 잘 나왔는지는 타인이 평가하겠지만 나의 하나님은 순간마다 내가 어떤 중심으로 임했는지를 바라보신다. 중심을 드리는 것은 나의 몫이고 지혜와 명철 그리고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삶을 이끌어 오신 방식에 나름의 art & science가 있음을 깨닫는 사람이 진정 겸손한 믿음을 갖는 자라고 생각한다. 공평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물론 믿어야 가능한 논리다.


과거의 많은 실수나 아픔은 나라는 인간의 삶을 평가함에 있어 마이너스가 되게 하거나 플러스가 되게하는 요인들이 아니다. 과거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개인에게도 적용해보라. 과거를 잊고 없던척하거나 가리는데 급급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장과 발전은 사실 없다. 표면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위안시키고 단단하지 않은 모래기반위에 집을 쌓는 것일 뿐이다. 깊이가 없는, 타인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이나 감동이나 위안과 위로를 주지 못한다. 그와 타인은 모두 경쟁자로 보일 뿐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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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자신에게 주신 길과 경주를 기뻐하며 자신의 길을 가라. 의미없는 타인의 시선과 무례한 조언등은 등뒤로 넘기고 오히려 그들의 쓸모를 감사히여기며 그들을 통해 주어지는 과제를 나의 경주로 여기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자신의 경주를 완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렇게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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