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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프 Aug 11. 2018

3


 1.

 일곱 살 생일에 유치원 선생님께 받았던 카드의 내용을 기억한다. '-이는 남자 친구도 여자 친구도 안 가리고 잘 사귀니까 초등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의 말은 사실이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중학교에 가서도 나는 같은 반 친구들과 쉽게 친해졌다. 왕따를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쩌다보니 친했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됐고, 그 관계가 표면적으로나마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결국 중학교 3학년 때는 내내 왕따를 당했다. 나를 비웃고 욕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못 들은 체 하며 나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한 사람이라고 필사적으로 믿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좋은 사이를 유지했지만 나를 왕따시켰던 애들에게 다시 욕을 먹을까봐, 그래서 지금 어울리는 친구들 외의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나를 싫어하게 될까봐 겁이 났다.

 대학교에 입학하며 결심한 것은 인간관계에서 최대한 노력해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는 거였다. 일명 '인싸'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마저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이야기하면 길지만 어쨌거나 스물네 살의 나는, 또 다시 인간관계에서의 소속감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어느 무리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감각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2.

 오늘은 친구들을 만나고 왔다. 알게 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연이어 연락하고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 졸업작품집을 읽은 친구들이, 글을 잘 썼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열심히 쓰기는 했지만 처음 써본 장르의 글이라 더더욱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가치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서. 그 생각이 들자마자 친구 관계란 뭘까 하는 고민이 떠올랐다. 사실 이 고민은 전에도 해본 적 있었다. 사람을 이유없이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만약 그 이유가 사라진다면 그 관계를 유지할 필요도 없어지는 거 아닌가? 연인 관계든 친구 관계든 말이다. 물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니 그 이유 중 한두 가지쯤 없어진다고 해서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상대의 나에 대한 마음이 변화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불안을 지우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아마도 과거의 경험 때문이겠지. 그러나 과거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3.

 사람마다 좋아하는 숫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3을 가장 좋아했다.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어릴 때 어디선가 나의 행운의 숫자가 3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이라는 숫자는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그렇다. 일대일로 만나 서로에게 집중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럴 때는 중간중간 내 정신을 쉬게 할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다. 여러 명과 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것도 괜찮지만 복작한 분위기가 편하지만은 않다. 셋이면, 딱 적당하다. 서로 눈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고 나머지 둘이 대화하도록 내버려둔 채 잠시 관망하며 쉴 수도 있다.

 어쩐지 최근들어 부쩍, 나를 포함해 셋으로 구성된 친구들의 모임이 생겨났다. 혼자일 때보다(둘이라 해도 상대가 관계를 수행하지 않는 동안 나는 혼자이기 때문에) 마음이 훨씬 든든하다. 그러면서도 가끔 두렵다. 이렇게 느끼는 소속감이 상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아닐까 싶어서.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감히 친구라 칭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비해 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의 크기 혹은 자신들에게 내가 기대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크기가 아주 작은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다.

 나는 내가 겁내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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