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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통영에 널 두고 간다

“하늘도 바다도 예쁘다”

“또 오자 통영. 같이.”


그날의 너는 반짝였다. 우리는 무척이나 예쁜 한 쌍이었다.    

 

그래 나는 지금 통영이다. 너와 왔던 통영에 15년이 지나 다른 이들과 함께. 이동하던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걷다 보니 너와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다. 다 같이 장소를 옮겨 다니다 그 틈을 타 몰래 빠져나와 우리만의 통영 지도를 만들기도 했는데.


“통영은 꿀빵이 유명하대” 밥보다 빵을 좋아하던 너와의 통영은 꿀빵으로 시작했다. ‘통영 어딜 가도 꿀빵 가게 하나쯤은 있겠지’란 생각을 하기 무섭게 눈 앞에 펼쳐진 꿀빵 가게를 보고 우리는 행복함의 발 동동을 굴렀다. 해안도로 옆으로 늘어선 각양각색의 꿀빵 가게를 하나하나 꼭꼭 눈에 담더니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조르르 달려가서 종류별로 가지고야 말았던. 꿀로 온몸을 감싼 빵을 오물오물 잘도 먹더니 이내 목이 막힌다고 가슴을 두드렸는데. 그날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해내려 애쓰며, 줄을 선 사람들 뒤로 꿀빵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널 위한 한 봉지를 샀다.    

      

김춘수 생가를 찾았더니 담벼락에 네가 좋아하던 ‘너와 나’가 있다. 가만 서서 읽어주던 탓에 난 그 시를 통으로 외웠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이게 진짜인지 거꾸로가 진짜인지 묻고 싶지만 기억 속으로 묻어 본다.        


너와 나

김춘수     


맺을 수 없는 너였기에

잊을 수 없었고     


잊을 수 없는 너였기에

괴로운 건 나였다   

  

그리운 건 너

괴로운 건 나     


서로 만나 사귀고 서로 헤어짐이

모든 사람의 일생이려니  

▲ 김춘수 시인의 대표 시가 쓰여져 있다 (상) 너와 나 (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시인이 떠난 생가에는 이제 낯선 사람들이 일상을 꾸려간다. 김춘수 집 앞 시비 옆에는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내어놓은 쓰레기도 자리를 한켠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찾아드는 통영 대표 문인 김춘수 생가 앞에 쓰레기가 함께하는 이 자체가 삶의 한 장면이다. 산다는 건 부단히 일상의 부스러기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이다. 쓰레기봉투 안으로 꼭꼭 숨겨봐도 매일의 다난함이 새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방 이후 통영에 돌아온 대여 김춘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건물의 기둥 끝 모퉁이를 잡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대론데 너는 왜 없어졌느냐’ 너와의 통영을 걸으며 나도 한참을 울었다. 너와 함께했던 통영은 그대로인데 내가 잃은 건 너뿐이다.      


▲ 강구안 보도교에서 내려다본 통영 앞바다


햇살을 받은 강구안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강구안 보도교에 오르니 발아래 바다, 머리 위에 하늘이다. 멀지 않은 곳에 서포루, 북포루, 동포루가 모두 보인다. 성벽 앞까지 오르내리던 파도는 더 이상 육지 위의 건물들로 가닿지 못한다. 원래는 모두 바다였던 곳에 현대식 건물과 화려한 상점 그리고 매끈한 도로들이 들어차 이제는 육지가 되었다. 지금의 강구안처럼 서로에게 가닿던 우리의 마음에도 이젠 다른 것들이 들어찼다.     


국내 멍게 70%는 통영에서 난다며 멍게비빔밥을 먹으러 가자던 너는, 멍게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덕에 더 많은 멍게를 먹어 좋지 않냐며 웃어대던 너를 떠올리며 지금은 1인분의 멍게비빔밥을 먹고 있다. 멍게를 먹지 못하던 난 네 덕에 멍게를 먹게 됐는데. 지금 봄기운 펄펄 난다는 바다의 약 통영 멍게를 직접 입에 밀어 넣고도 힘이 나지는 않으니 이상할 노릇이다.      


아까 샀던 꿀빵을 내려놓는다. 이제는 통영에 널 두고 간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네가 말했었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바쳐서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건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였다고. 거북선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다음에는 봄에 오자고 했던 그 통영에 나 혼자 와서 미안하다. 그리고 이제 너를 두고 가서 또 미안하다. 네가 없는 통영에 홀로 와 이제야 비로소 너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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